진흙 스프* /강영은
그녀는 그때, 넘실거리는 가스불의 긴 혓바닥을 조절하며 수프 냄비를 휘젓고 있었어요 수프 냄비는 아주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어요 엄마, 저 수프 좀 봐, 수프가 넘치고 있어요, 발 돋음 한 채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소리를 질러요 창 너머 흙의 붉은 살점들이 뭉그러지고 있었는데요 발가락까지 드러난 나무들이 무너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는데요 저런 수프가 무척 먹고 싶은 게로구나, 조금만 참으렴, 그녀가 호호 웃어요
창 넘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와 뿌리째 서 있는 나무들이 소용돌이치며 잘게 부서지고 있었는데요 엄마, 저 수프는 누가 끓인 거야? 아이가 그녀의 치마폭으로 달려들어요 잘게 부순 식빵 조각을 넣고 이제 곧, 따끈따끈한 수프를 먹으려던 참 인데요 수프 속에 네모난 식빵 조각을 넣기도 전에 끈적끈적하고 검은 수프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쏟아져 내려요
수프를 먹는 스푼처럼 공중에 떠 있는 채 그녀도, 그녀 아이도 수프 속의 건더기가 되고 말았는데요 수프를 만드는 그토록 많은 그녀들도 모두 수프가 되고 말았는데요 수프 속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입이 지옥의 입구처럼 벌어져 있어요 사람들을 통째로 집어 삼킨 저 말랑말랑한 입이라니! 스피노사우르스*의 이빨처럼 정말이지, 저렇게 커다란 입을 가진 수프를 끓인 손은 누구의 손일까요?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최대 3천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리핀 중부 레이테 섬 의 기온 사우곤 마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플로렌시오 비라톤 씨는 “쾅!쾅!쾅! 마치 헬리콥터 굉음 같았다”고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산이 무너졌다”는 아내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수프처럼 흘러내려온 진흙과 바위, 나 무 조각들에 집이 무너져 내렸다고 그는 공포스러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 AP 통신-
'녹색비단구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목마을을 지나며 (0) | 2015.09.22 |
---|---|
클럽 아마존의 악어 사냥 법 (0) | 2015.09.22 |
감자의 9가지 변주 (0) | 2015.09.22 |
그가 나를 쏘았다 (0) | 2015.09.22 |
작시법 作詩法 (0) | 2015.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