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비단구렁이

나팔꽃, 이별을 연주하다

너머의 새 2015. 9. 7. 00:45

나팔꽃, 이별을 연주하다/강영은


7월의 난간 위로 덩굴손이 기어올랐다
아침이면 검푸르게 흔들리는 그들의 침실에선
푸르고 붉은 나팔꽃들을 피워냈다
한낮의 태양 아래 단단하게 오므리;고 있는 그 꽃들이
주름진 내막은 알지 못햇지만
여름 내내 햇살이 뜨거웠고 밤이 길었다
새벽이면 누구의 눈물인지 모를
이슬이 매달려 있었지만
튼튼한 올가미로 제 몸의 벼랑을 이어갔다
허공이 몇 번 피었다 지는 동안
제 몸의 길들과 헤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타고 오르던 벼랑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누렇게 시든 허공 속에서
제 몸의 일생을 연주하던 나팔관이
검은 씨앗을 맺기 시작했다
마지막 말 같은 그것들이 터져 나왔을 때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가을이 왔다
그렇게 이별이 왔다

툭, 건드리면 탁, 아가리가 벌어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