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리뷰

생명, 열정, 사랑, 그리고 시 /이형권(시작 주간, 충남대 국문과 교수 )

너머의 새 2015. 9. 10. 12:09

■ 생명, 열정, 사랑, 그리고 시 /이형권(시작 주간, 충남대 국문과 교수 )

-강영은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 2008>






그녀의 이름은 시집을 통해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문단의 돈키호테 (목포에 사는 김 선태 시인의 명명) 반경환 평론가를 통해서 들었다. '지혜사랑' 시선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들은 그녀의 시에 관한 이야기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이름은 "녹색비단구렁이"라는 시집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 시집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최근 내게 전해진 시집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구체화 되었다, 나는 내게 전해진 시집들을 읽는데에는 나름대로의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정한 기간에 전해진 시집들을 연구실 탁자에 올려놓고는 한 권씩 들어올려 표제작을 포함하여 앞에 배치된 두세 작품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 결과 더 이상 읽어볼 필요가 없다 싶은 시집들은 책꽂이로 직행시키지만, 뭔가 끌리는 시집들을 만나면 슬그머니 의자에 앉아 끝까지 읽어나간다. 강영은의 시집을 만날 때에도 나는 나의 오랜 버릇대로 표제작인 <녹색비단구렁이>를 먼저 읽어보고, 다시 앞 부분의 <매미시편>,<벌레시인>,<허공모텔> 을 읽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가만히 의자에 앉아 계속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나는 도대체 이시인이 누구인지 궁굼해서 표지 날개의 이력서를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에 비해서 등단 과정이나 시력이 특이한 점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집을 다 읽고난 후 나는 그녀의 시가 깊은 바다에서 숨겨져 있다가 나온 진주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시는 체험과 상상 가운데 체험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듯 하다. 이 시집에서 자주 보여주는, 시적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거기서 얻은 시적 영감을 주관적 정서로 표출하는 방식은, 전통의 서정시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녀의 시가 상상의 영역이 빈약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세월의 무게를 하릴없이 견뎌온 중년의 여성 시인이지만, 상상력에 관한 한 소의 '아줌마 시인' 의 범주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아줌마 시인' 들이 흔히 보여주는 밋밋한 시상, 식상한 메타포, 과도한 감정의 표출 등과 같은 아마추어적 특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현실에서 체험적인 것들을 미세하고 기발한 상상의 언어로 전환시키는데 만만치 않은 솜씨를 지녔다. 이 시집에는 재치가 넘치는 시가 적잖이 눈에 뛰는데, 특히 주목할 작품들을 편의 상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하나, 내 시는 강인한 생명의 언어이다



<매미시편>,<벌레시인>,<거꾸로 가는 문장>, <작시법>, <담쟁이> 등의 시편들은 시에 대한 자의식을 수준 높게 보여준다. 시적 자의식을 시로 형상화 하는 일은 실상 이중의 어려움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시에 대한 성숙된 자의식을 확보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의식을 어떻게 형상화 하느냐의 문제가 개입된다. 시적 자의식을 드러내는 시편들은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애만 성공할 수 있다. 강영은 시인의 위의 시편들은 적어도 이 두가지 요소들을 일정한 수준에서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이를테면 잘 빚어진 시론시 <작시법>을 보라.






먹이를 찾아가는 수백만 마리의 누(gnu)* 떼가

대평원을 흔들며 달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드럼통 같은 몸뚱어리를 떠받치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함께 달린다



날카로운 이빨에 맞서는 것은

기우뚱거리는 발목의 힘뿐이지만

그 가느다란 끈이

발자국을 묶어주면서

건기를 지나

풀이 무성한 우기로 대평원을 운반한다

구르고 나뒹굴며 생의 행간을 지나는 길





누가,

누가 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긴 문장을 완성하는 누 떼의 행렬 사이
누에게 길을 묻는 햇빛의 발자국이 간간이 섞인다



*누(gnu) ;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거대한 영양



-<작시법>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맹수들의 "날카로운 이빨'을" "기우뚱거리는 발목의 힘"으로 피해나가는 "누"라는 순한 짐승에 주목하면서, 이 "누" 떼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끈질긴 인내심을 간직한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러한 "누" 떼의 생리는 시를 창작하는 원리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강영은 시인의 시적 자의식과 깊이 관련되므로, 그녀의 "작시법"에서 "시"는 어떠한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의 발현이어야 한다. 그녀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저의 생명을 지켜내려는 "누"의 모습과, 자기 정체성과 언어를 지켜나가기 위해 온작ㅈ 현실적인 악조건을 극복해 "시"로써 극복해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한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누가/ 누가 되지 않고 지나갈수 잇을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시인도 "누"의 생리에 의지하지않고 산 세상을 "지나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실상 한 시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누" 떼의 역동적인 생명력과 비견되는 강인한 의지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시인은 풀 죽은 듯한 세상에 탱탱한 언어의 긴장감을 제공하여 사람들을 활력 넘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 문장을 완성하는 누 떼의 행렬"은 시를 쓰는 시인의 행위와 다르지 않은 것이면서 "햇빛의 발자국"마저도 "길"을 묻을 정도로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자의식으로 보건대 그녀는 이 시집 이후로도 어떠한 세파에 흔들림 없이 시 쓰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둘, 내 인생은 열정적 꽃이다




<능소화>,<사막장미>,<감자의 9가지 변주>, <녹색비단구렁이>,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바늘들> 등의 시편들에는 삶에대한 진지한 성찰의 자세가 드러난다. 주지하듯 인생 성찰은 객관의 주관화라는 서정 양식에서 가장 빈도높게 취택되는 테마에 속한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는 일은 그것이 실존적 차원의 근원적 성찰이든 현실적 차원의 자기 점검이든 시를 쓰는 사람들의 기본적 태도이다. 강영은 시인은 자기만의 개성을 마음것 발현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엄마가 내 푸른 담요를 걷었을 때

나는 꽃이 될 거라는 예감을 가졌어요.

꽃이 나에게 노크를 했거든요.



엄마가 내 몸 속에

얼마나 많은 꽃씨를 숨겨 놓으셨는지

보세요, 저리도 많은 발가락과 손가락들을

마구 뻗어난 길들을



늙은 소나무의 축 늘어진 그것이든

버드나무 휘어진 허리춤이든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

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잖아요?



폭염에 술 취한 딸처럼

주홍빛 얼굴을

울컥울컥 게우고 있잖아요?



그게 나라구요, 나였다구요



그러니 엄마, 습한 문 열고 나 장마 지게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툭, 툭,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두세요



-<능소화>전문









여기서 "나"의 염원은 "꽃"으로 표상되는데, 그것은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거나 "주홍빛 얼굴을/울컥울컥 게우고 있"는 존재이다. 이 "꽃"은 내명에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사는,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엄마" 에게 "나답게, 꽃답게" 살면서 " 툭, 툭,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 달라는 간청 속에는, 그 열정을 제어하는 존재("엄마")를 향한반항 심리를 담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시의 주인공은 구격화된 현실에 길들여지지 않은 채 자신의 내면에 들끓는 열정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발산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이다. 삶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제 몸이 삼ㅌ킨 사막을 피워내는 내 안의 꽃"(사막장미)이나 "나는 저장해둔 감자, 당신의 심장부에 핀 푸른 솔라닌//치명적인 꽃이지"(감자의 9가지 변주)에서도 드러난다 "사막"을 "꽃"으로 피우는 일이나 "당신의 심장부"에 "치명적인 꽃"을 피우는 일은 진솔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강영은 시인은 여러편의 시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강인하고 치열한 열망을 지닌 존재인 "꽃"이라고 선언하는 셈이다. "꽃"을 향한 이 열망은 한편으로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 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녹색비단구렁이)라는 더 깊고 진솔한 성찰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이 때 "깊이 모를 슬픔"과 함게 살아가려는 시인의 소망은 삶의 근원적 진실에 침잠하면서 살아가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닐 수 없다.






셋, 타락한 세상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다






<발칙한 속도>, <문자의 세상>, <그가 나를 쏘았다>, <소비되는 봄>,<연주암 오르는 길>.등의 시편들은 부조리한 문명세계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이 시집에는 "시간" 혹은"속도" 라는 시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것은 몽주체적인 삶의 매커니즘으로서 인간의 사유와 감각의 여유를 상실한 채 현대 문명에 대해 맹목적으로동조하는 사람들의 타락상을 표상한다. 이를테면 "발칙한 속도"에서 "그녀들을 향해 돌진하는 이 시대의 속도는 무효다" 라는 선언은, 사이버 공간의 "스팸 편지함"을 통해 유통되는 음란물들의 재빠른 유통과 은폐의 생리에 대한 강한 부정의식을 내포한다. 이러한 세상을 건너가기 위해서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다. 이 시집의 <허공모텔>,<제논의 화살>,<푸른 식탁>등의 시편들에서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다.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저, 모텔에 세 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 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

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

자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 수 있다면,



-<허공모텔>전문


시인은 "가시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 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텔 한 채 짓고 있다"고 여긴다.그리고 그 "모텔"에 "세들고" 싶다고 한다. 이 때 "모텔:은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은 진실한 사랑의 공간이다 그러면 열망의 대상인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는 어떤 존재인가? 청정 지역에 사는 희귀한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처럼 개끗하고 맑은 자연과 잘 어울리는 영혼을 소유한 멋진"사내"일 터이다. 시인은 그와의 사랑이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릴 정도의로 굴광성 마저 지나길 바라며 "어여쁜 죽음 하나"낳기를 바랄정도로 치열하고 완전하기를 꿈꾼다.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사막한 세상을 물리치면서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를 만들 수 있는 위대한 것이니 "허공 모텔"에 들기를 바라는 시인의 꿈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라건대 상상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그러한 사내 하나 만나서 "발칙한 속도"로 내달리는 타락한 세상을 잘 건너가기를 바랄뿐이다. 오늘은 풍뎅이처럼 풍풍거리거나 똥파리처럼 윙윙대는 사내들이 들끓는 세상이니, 그런 사내를 쉽사리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애지 2008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