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새 2015. 9. 7. 00:47

첫 눈/ 강영은




신길동 산 144번지

옷을 훌훌 벗어 던진 가을이 진압군처럼 밀려왔다
뒷산 상수리나무 숲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낙엽더미가 흘러 넘쳤다

밥도 빵도 되지 못하는 도토리가
마른 젖꼭지를 물리고 있는 산동네를 돌며
폐품을 뒤지던 고물상 김씨가
딱딱하게 굳은 사내를 찾아냈다

“쓸만한 물건인 줄 알았다니까요”

사내의 입이
빈 젖무덤을 물고 있었던 것일까

허옇게 흘러내린 거품이 말라붙어 있는
그의 입이 둥글게 부풀어 있었다
불 꺼진 구공탄처럼 뒹구는 그의 품에서
푸드득, 산비둘기 한 마리 날아올랐다

깃털 같은 허공이 하얗게 흩날렸다
검은 얼룩으로 뒤덮인
철거 촌의 입구를 지우는 瑞雪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