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비단구렁이
알밤장수 김씨
너머의 새
2015. 9. 7. 00:51
알밤장수 김씨/강영은
오늘도 그는,
팔다 남은 알밤 하나를 지그시 깨문다
싱싱한 날밤을 한 입 깨물자 물컹거리는 것이
혀끝에 와 닿는다
이 벌레 씹은 맛이라니!
고름처럼 뭉개진 하얀 속살에 그의 혀가
움칠, 뒤로 물러선다
단단한 과육의 허를 찌르는 물렁한
힘의 본체는
캄캄한 굴헝의 길을 뚫는 굴착기,
바퀴자국 하나 없이
어둠을 밀고 가던 고요한 生이었다
꿀꿀이 바구미의 단단한 길이 물렁한 몸과
서로 밀고 당기며 푸른 하늘을 향해
통로를 내고 있었던 걸까
파먹거나 파 먹혔던 구멍의 기억들
우화되지 못한 상처가
싱싱한 그를 금가게 한 것인지
그의 리어카는 지금
밤송이 껍질 그득히 엎어놓은 망우리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