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비단구렁이
푸른 식탁
너머의 새
2015. 9. 22. 22:14
푸른 식탁/강영은
여긴 너무 고요한 식탁이야 고요가 들끓어서 목젖까지 아픈 식탁이야 전골냄비처럼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수평선에 입술을 덴 하늘도 푸른 식탁이어서 냄비뚜껑의 꼭지처럼 덜컹거리는 여긴 정말, 숟가락 없이도 배부른 식탁인거야
저기 봐, 수평선 넘어 부푼 구름이 빗방울로 밥물 앉히는 중야 들어 봐, 밥물 잦아지듯 숨죽이는 파도 소리 한 냄비 부글부글 끓는 수평선으로 살림 차린 나와 당신도 어쩌면 식탁인거야 서로의 등뼈에서 슬픔을 발라먹던 식탁인거야 생선가시에 걸린 것처럼 내 목울대가 자주 울먹이는 건 당신보다 내가 더 식탁이었다는 증거야
오늘은 사계바다처럼 낯선 식탁이 되어 보는 거야 해안도로, 차량이 드문드문 외로움을 내려놓는 갓길에 앉아 노랑나비 한 쌍과 마주앉아 식탁을 차리는 거야 식탁보처럼 바다를 덮어보는거야 푸른 고래 등 같은 수평선을 한 입에 탁 털어 푸른 것은 푸르게 삼키고 쓸쓸한 것은 쓸쓸하게 건너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