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늘

바실리스크

너머의 새 2015. 9. 23. 12:45

바실리스크/강영은

-커다란 물 도마뱀이 내리는 도시, 오후가 늪 속에 잠겨 비대해진다. 창
궐하는 늪을 개인적인 슬픔이라 버텨보지 만 방주를 기다리는 슬픔은
속절없는 고대의 양식, 우울한 몽상가처럼 비의 알약을 삼킨 유리창은
울지 못 한다. 함부로 울어서는 안 될 불문율이 이 도시에는 있다 -




난생의 빗줄기는 앞다리가 뒷다리에 닿지 않는다.
몸통을 버린 꼬리만, 젖은 벽을 다시 적시며 줄기차게 번식한다.
물의 도시에 사는 언니는 통화가 끊긴 지 오래,
캐나다로 떠난다는 막내 동생의 문자메시지는 젖은 목소리,
줄기차게 내리는 불협화음이 액정 속을 누비는데
누가 저 괴물을 지상으로 불러내었나,
물 도마뱀의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불꽃같은 황토가 흘러내린다.
천년 묵은 바위가 산산조각 난 침묵이 길 건너 아파트를 덮친다.
바라보기만 해도 돌이 되거나 죽는다고 했던가,
그와 살을 맞댄 누구도 살아 돌아 온 자는 없으니
아무도, 방금 지나간 눈동자조차 맹독의 알을 품은 따오기처럼 눈을 가린다.
구름을 과적한 앞산과 울창한 숲에 깃든 새들과 새로이 난 길과
그 위에 놓인 푸른 벤치는 눈을 부릅뜬다.
백년 만에 찾아오는 무서운 의심이다.
여덟 개의 물갈퀴로 강물을 걸어 나간 의심은
잠수대교 부근에서 수위를 높이다가 무너진 담벼락 부근에서 불어난다.
벽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던 의심이 둥근 알을 부화하며 들이 닥친다.
이 저녁의 보호색이 묽어진다.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의심이 점점 더 투명해진다.
어떠한 전설도 끝은 있기 마련이라는 말이겠지만
의심에 대한 난생설화는 여전히 진행 중,
산 정상에 물로 지어진 둥지가 있다는 것을 깜빡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묻는다.

젖은 꼬리여, 그대의 몸통은 안녕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