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늘

라르고 풍으로,

너머의 새 2015. 9. 23. 12:58

라르고 풍으로,/ 강영은



온음표를 뒤집어 쓴 거리를 2분음표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4분음표의 자동차와 버스가 윈도우 속에서 사라진다

하얀 털모자를 눌러 쓴 낙산 위에선
16분음표의 바람이 썰매를 탄다

공원의 비둘기들은 엇박자 8분 음표, 종종거리는
빨간 종아리들은
몇 분 쉼표의 허공을 날려보낼까

낮은음자리표들이 몰려드는 무료급식소 앞,
정오의 태양이
더 높은 음자리표로 옮겨간다

젖은 눈송이 하나가 급식판에 달라붙는다
최초의 눈송이는 노숙자의 어깨에 떨어졌지만
펑펑 쏟아지는 눈은 이제 메트로놈처럼
공간을연주한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은 페르시아 왕처럼
한 박자도 놓치지 않는 12월의
옴므라 마이푸,

파리 제과점 앞, 반짝이는 별과자를 바라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라르고풍으로
워진다








ㅡ 월간지『시문학』2010년 2월호, 8인 기획특집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