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벽의 사원
파벽의 사원/강영은
차가운 돌바닥에 피를 찍어 서간체의 문장을 쓰는 저녁입니다. 모서리가 부서진 벽의 흥망성쇠에 대해 핏자국이 묻어나는 손바닥만 읽어주십시오. 소멸된 제국의 동글고 기다란 모서리를 읽을 때마다 세습의 붓대로 바람의 갈기를 그려내는 풀들과 부서져 내린 돌조각이 빛내고 있을 폐허란, 어제의 삶은 전개 되지 않고 죽음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
돌로 된 연꽃이 초원에 피는 동안 돌이 된 남자는 온 몸에 못을 박고 돌이 된 여자는 뼈 마디마디가 불에 던져져 검은 벽으로 서 있을지 모르지만 지워지지 않는 문장 속에서 울음을 꺼내는 것은 묵언의 입술을 깨트려 쪼개진 심장 같은 파편을 보여주는 일,
돌 하나를 흔들면 돌 뿌리를 붙들고 있는 또 다른 돌이 무너져 내리고 어디 먼 데 돌산이 따라 울 것만 같아 멀리 갔다 돌아오는 발목을 캄캄한 어둠에 내준 당신의 내면은 안녕하신지, 모나거나 못날수록 더 세게 두들겨 맞은 어제의 풍경만 읽어주십시오. 양떼구름을 몰고 가는 서녘이 붉게 빛나고 심장이 뜨거워질 때 나는 내 어머니가 손수 자른 배꼽을 열고 단전 깊숙이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첨부 하겠습니다.
정(鋌)이며 쇠망치가 몸속을 파고들 때 비로소 소리를 내며 우는 돌, 돌에게도 울고 싶은 입이 있다는 것을 귀만 있고 입이 없는 허공은 압니다. 허공 깊숙이 박혀 있는 별들도 알고 보면 커다란 돌덩이에서 떨어져 나온 파벽들입니다. 금강석 브로치를 옷깃에서 떼어내듯 누군가 그 속에서 별빛을 꺼냈습니다. 눈에 닿지 않는 육각형의 별빛처럼 부서진 모서리를 기웃거리는 문장 속으로 별의 눈물, 유성우가 쏟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