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늘

말의 후손

너머의 새 2015. 9. 23. 13:13

 

말의 후손/강영은



 남자가 건넨 최초의 말은 눈웃음, 고삐를 쥐어준 최후의 말은 손짓과 발짓,

 당근 대신 붉은 장갑을 끼고 채찍대신 잔뜩 겁먹은 눈으로 말을 따라간다 다른 부족에게 납치당한 몽골 처녀처럼 말똥냄새 땀 냄새로 범벅 진 말을 다소곳이 따라 간다 속도가 다른 말의 층위에 온 몸의 리듬과 느낌을 실어 나른다 말문을 처음 열 때처럼 말을 껴안은 등줄기가 곤두서고 말을 감싼 허벅지가 팽팽해진다 그의 말은 바람에 날리는 갈기와 근육질의 엉덩이로 세계를 질주한 속도의 후예, 매끈하게 다듬어진 등 외엔 수식이 없다 사막과 초원을 가로지른 엉덩이 외엔 안장이 없다 마음보다 먼저 몸을 낚아챈 말의 거리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것처럼 멀지만 말 타기의 기초는 마음을 여는 것, 눈 속에 들어있는 초원만 읽기로 한다 한 줄금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푸른 단어가 일렁인다 말과 말사이 경계가 사라진다 말의 국경이 사라진다 경도와 위도를 가로 지른 말과 말 사이, 초원만 남았다 사막과 초원, 습합의 땅에서 피어난

 그리움은 이국어도 모국어도 필요 없는 말의 후손, 최초의 그리움은 손과 발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