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읽는 현대시
어머니. 천둥번개 치고 비 오는 날이면 비 냄새에 칭칭 감겨 있는 생각을 벗어버리고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어요 모과나무 가지에 매달린 모과열매처럼 시퍼렇게 독 오른 모가지를 공중에 매달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신부가 되어 한 번의 낙뢰, 한 번의 키스로 죽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내 몸의 죽은 강물을 퍼 나르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뿐이에요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의 징검다리 뿐이에요 내 몸에 똬리 튼 슬픔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연두에서 암록까지 간극을 알수 없는 초록에 눈이 부셔 밤이면 독니에 찔려 죽는 꿈들만 벌떡벌떡 일어나요
어머니, 녹색비단구렁이새끼를 부화하는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는 초록의 음모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
'보들레르'의 퇴폐적 관능미와 저항정신이 미당의 토속적 원생주의와 결합되어 탄생한, 미당의 첫시집인 <화사집>, 외면적으로는 꽃처럼 아름답지만 내면적으로는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양면성을 지닌 꽃뱀을 통해, 미당은 인간타락(실낙원) 이전의 원시 생명에 대한 외경을 추구했다. 강영은 시인은 '미당'의 이런 '화사' 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美와 추醜 의 양면성을 지닌 <녹색비단구렁이>를 통해 '죽은 생각''과 '죽은 희망'인 화려한 녹색 껍질을 벗어버리고, '삶의 존재론적 원동력인 슬픔'을 지닌 생생한 몸의 인간(시인)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한다.
"비 오는 날이면 비 냄새에 칭칭 감겨있는 생각을 벗어버리고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다면서 정신적인 "생각"에서 육체적인 "몸"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녹색비단구렁이인 강영은 시인, 그리하여 시퍼렇게 독 오른 모가지를 공중에 매달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원시적으로 살고 싶지만, 위선으로 가득 찬 바깥 세상은 자신의 비단 옷처럼 외양만을 강조하는, 다시 말해 내면의 깊은 슬픔 보다는 외면의 화려한 희망만을 추구한다고 절망한다.
"녹색비단구렁이 새끼들을 부화할 뿐인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리며, 초록희망의 세계에서 초록희망새끼를 낳고 살아가는, 다시말해 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는 이런 초록의 음모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절규하는데...................... 자신을 둘러싼 화려한 희망의 초록 껍질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 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다'면서, 사람의 허울 뿐인 껍데기,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는, 삶의 근원적 슬픔을 노래하는 비극적 운명을 지닌 시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한다/ 강성철(시인)
테마로 읽는 현대시 /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1-2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