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새 2015. 10. 22. 22:47

 

 흙잠/강영은

 


얼었다 녹았다 하는 물자배기 속 빙점이

직립의 꽃대를 쓰러뜨렸다

물과 흙이 사이좋게 밀어 올렸던 보라 빛 꽃대가

12월의 습지대로 유배 된다  

당신과 내가 꽃을 피우는 건 근친상간이래

여름의 부록 같은 꽃 무덤 속

등이 까무룩하니 휘어진 바람이 주석을 단다 

그리움의 둘레만 맴돌았던 것일까

 

강북에서 강남으로, 월세에서 전세로

강줄기 따라 밀려다니던 부레옥잠

누옥 한 칸 마련하느라

꽃으로 피어났던 기억이 얼룩진 누선이다

花, 花, 웃던 시절이

서재에서 주방으로 안방으로 화장실로

물무늬로 번진다

꿈 없는 꽃이 빈 잠 속에서 흔들린다

꽃대가 부러진

얼음 침대는 동녘이 밝아오면 사라질까? 

깨어진 꽃향기가 빠져나간 한 조각 바닥은

둥그런 흙꽃이다

등과 등이 얼어붙은 혼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