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등 바다의 등
아궁
너머의 새
2015. 10. 22. 22:52
아궁/강영은
아가가 처음 궁문을 열었을 때 아궁불열의 입술로 아궁, 하
고 대답했을 뿐 나도 모르게 자궁 같은 비의를 발설했을 뿐 짐
승의 언어로 꽉 차 있는 내 입술은 그 궁전에 들지 못했다
오므렸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입술이 새벽처럼 당도하는 곳
수 억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최초의 모음으로 흩어졌다 모이는
곳 세상에 중독된 내 귀는 무한 공간 같은 그 곳에 들지 못했다
몸속에 들어 있는 폐궁인 줄 알았으므로 잊혀 진 궁문을 지
키는 문지기처럼 아가의 입술에 귀를 묻은 채 아궁, 아궁,
뜻도 기원도 모르는 문을 열고 닫는 동안 아궁과 폐궁 사이,
아가와 나 사이, 둘만이 아는 통로가 생겨났다 신의 언어로
문패를 내건 궁속으로 들어갔다
별꽃이 피고 지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좋았다
아궁은 아가가 세운 말의 궁전, 눈으로만 들 수 있는 황홀
한 미궁, 별을보고 길을 떠난 동방박사처럼 아궁에 눈을 바치
고 돌아오는 길 세상이 온통 아침인 것을 어떻게 설명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