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시론詩論
말벌의 형식
너머의 새
2016. 3. 7. 19:22
말벌의 형식/강영은
봄날에는 화장을 하지 말자 훈제향이 듬뿍 밴 소시지가 된 것처럼 꽃나무 아래 둘러앉아 고기를 굽지말자
지글지글 냄새가 피어오르는 불판을 앞에 두고 비 맞은 사람처럼 팔을 젓거나 비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우산을 휘두르지 말자
어느 생에선가 쏘아붙였던 말의 罰처럼 썩은 둥치에 세 들어 있던 말벌이 튀어나온다 꽃나무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풍경을 양도한 벌이 쏟아져 나온다
더 많은 그들을 불러오므로 검정 옷을 좋아하는 우리는 너 죽고 나 죽자, 덤벼드는 꽃빛에 그림자를 걸어두자
눈과 코와 입을 틀어막고 서서히 죽이는 도모지처럼 죽음 직전의 사람을 살려냈던 가장 아름다운 針으로 일격을 가하는 것은 그들의 형식,
창호지를 바른 격자창처럼 소외된 얼굴을 드려다 보았을 뿐인데 서먹서먹한 봄의 미간 사이로 무엇인가가 슥 스쳐갔다 퉁퉁 분 눈 등 아래 죽어 있는 말벌 한 마리,
이마에서 턱 끝까지 보이는 것은 모조리 감춘 표정 속에서 간신히 혓바닥을 내놓은 나를 고기 굽던 집게가 골라내었다
통증 번지는 얼굴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때 꽃나무 아래 둘러앉아 고기 굽던 봄날이 지나갔다
『문예바다』 201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