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리뷰

양파論/강 수(시인)

너머의 새 2015. 9. 7. 01:16

양파論/강영은


몇 겹의 비밀로 이루어진 몸이 있다

흙보다 더욱 캄캄한 시간으로
제 안을 감싸는 무덤처럼

겹겹이 덮인 생의 내력으로
지탱되는 몸

지상의 모든 길들 돌아 와
하얀 어둠의 옷 하나 씩 벗을 때마다

더욱 작고 단단해지는 그, 눈부신
부재의 중심에서

나는 더 이상 만져지지 않는
옷으로 남는다



해설/강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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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이 없음이고 없음이 있음이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다. 이런 선문답 같은, 역설의 논리로 꽉 차 있는 것. 그것이 삶이다. 시인은 양파를 통해 그러한 삶의 본질을 나름대로 꿰뚫고 있다. 이 시의 화자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不在부재 즉, 無무를 핵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의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햇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 때문이가. 그것은 없음(無)을 있음(有)으로 만들어 준다.양파를 앵파이게끔 하는, 양파라는 존재의 근원이다. 우리 삶의 근원이다. 없음을 핵으로 한 있음, 그것이 바로 양파의 존재 방식이고, 우리의 존재 방식이다. 그러니까, 옷을 다 벗고나면, 있음(有)을 다 벗고나면, 없음(無)만 남는다. 없음을 핵으로 해서, 있음으로 살다가, 다시 없음으로 가는 것, 그것이 우리 존재의 방식이다. 내가 그렇게 아득바득 얻고자 했던, 옷들을 벗거 벗거 또 벗고 보면, 나는 만져지지 않는 옷으로 남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다.

2006년 시선 봄호 리뷰작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