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시론詩論
몰입의 기술
너머의 새
2016. 4. 4. 14:43
몰입의 기술/강영은
깊이 모를 물보다 깊이 모를 마음이 두려운 당신과 내가 장흥에서 배타고 성산포 가네
장흥에서 성산포로 맨 먼저 달려가는 건 뱃고동 소리겠지만 뱃고동 소리보다 먼저 달려가는 건 물결이겠지만
물결 소리보다 귀가 빠르게 달려가네 귀가 가려운 당신과 내가 물결을 밀고 가네
일출은 먼데, 일출은 먼데 낙담하는 물결이 배를 밀고 가네 물결에 밀리는 건 당신과 나 뿐인데
모르고 한 맹세는, 쉽게 한 약속은 방향을 바꾸지 않네
입장을 바꾼 당신과 내가 세상의 모든 바다에 닿네 잇몸으로 핥는 파도의 말씀이 순해지네
옛날에, 옛날에 흘러들었던 항구, 도무지 헤어질 수 없는 항구,
물결소리를 담은 귀가 항구를 낳네 물결에 몰입해온 바다가 낯을 바꾸네
장흥에서 성산포 사이 바다뿐인데 바다가 처음으로 항구를 바라보네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온 얼굴이네
『다시올문학』 201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