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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희의 시집소개 12-강영은 시인의 <풀등, 바다의 등>

너머의 새 2016. 4. 4. 15:03

강영은 시인이 <최초의 그늘>에 이어 다섯 번째 시집인 <풀등, 바다의 등>을 문학아카데미시선 244 번으로 출간하였다. 강영은시인은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 창작'이 주관하는 '2012 한국 시 문학상' 수상자로 '풀등, 바다의 등' 외 1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상을 수상하였다.

'2012 한국 시 문학상' 수상작이면서 <풀등, 바다의 등>시집에서 ‘바다가 그녀고 그녀가 바다다’라는 작품에 이어 두 번째로 실려있는 ‘풀등, 바다의 등’ 작품전문을 소개한다.

<풀등, 바다의 등>

풀등이란 말, 풀에게도 등이 있다는 말
입에 풀칠을 하거나 입을 다문 소식에 우표를 붙이거나
늙어가는 입술에 착착 달라붙는 말 같아서 참, 좋다

풀여치가 밟고 가고 실잠자리가 알을 낳는 등
사는 동안 그보다 가벼운 등은 못 만났지만
제 몸보다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은 그냥 눈감아버리고
가냘픈 등에게만 허락하는 말 같아서 참, 따뜻하다

밭고랑에 박혀 일만 하던 어머니도
학자금을 빌리러 가던 아버지도
멀리서 보면 한 포기 풀, 이제는 풀만 무성한 무덤가에서
살랑대는 말 같아서 참, 쓸쓸하다

연인들이 반지를 교환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풀등
참, 좋고 따뜻하고 쓸쓸한 등이 있다는
대이작도로 간다
풀반지로 족할 가난한 사랑 하나 만날 수 있다면
그 등에 기대어
파도와 몸을 섞는 이름 없는 풀이어도 좋겠다

뿌리가 뽑히기 전에
제자리를 떠날 수 없는 풀들이
섬의 안쪽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휘어질수록 물보라를 날리는 물빛 등만 출렁일 뿐
풀등은 보이지 않는다

풀등은 모래바람 날리는, 모래로만 말하는 등
물고기의 뼈가 삭아져 내린 바다의 등
바닷바람에 휘청거리던 내 등이 펴진 건
은갈치 떼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등을 본 직후였다
등이란 본래 스스로 일어서는 직립의 뼈대인 것

25억 1천만 년 전에 수장된 나를 다시 보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풀등 : 대이작도, 바다 한가운데 길게 펼쳐진 모래섬, 하루 여섯 시간, 바다 위로 나타난다.



강영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최초의 그늘>이 에드가 앨런 포우의 “갈가마귀”(The Raven)를 읽을 때와 같이 선과 악을 뛰어넘고 현실과 몽환을 넘나들게 하는 유미주의의 진수를 느끼게 하였다면 이번 <풀등, 바다의 등>에서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하고 있다.
시인은 풀을 한 움큼 베어 안은 청소년에서 사그라져 가는 노인의 모습까지 다양한 인생군상을 풀의 모습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 강영은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에 실린 시를 읽어 가면서 인간의 희로애락이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수채화 속에서 가슴 아프지만 그렇게 진하지는 않은 슬픔이 배어나는 것 같다.

강영은 시인은 제주에서 출생하였고 제주여고, 제주교육대학,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하였다. 2000년에<미네르바>에서 등단하였고 시집 <스스로 우는 꽃잎><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 그늘>를 출간하였으며 이번에 다섯 번째 시집 <풀등, 바다의 등>을 문학아카데미시선 244 번으로 출간하였다.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 창작'이 주관하는 '2012 한국 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시인협회’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과학기술대학 평생교육원’ 시창작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풀등, 바다의 등>은 문학아카데미시선에서 출간하였고 값은 1만원이다.

<제주인뉴스 양금희편집국장>
(세계로 열린 인터넷신문 제주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