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제주아침(9) 제주신문 2013.12,,04
소가 드러누운 것처럼 각이 뚜렷한 너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남쪽은 날마다 흔들린다
창을 열면 그리운 남쪽,
살청 빛 물결을 건너는 것을 남쪽의
남쪽이라 부른다면
네 발목에 주저앉아 무서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서움보다 깊은 색, 살이 녹아내린
남쪽은 건널 수 없다
눈이 내리면 너도 두 손을 가리고 울겠지,
눈 내리는 날의 너를 생각하다가
북쪽도 남쪽도 아닌 가슴팍에 글썽이는 눈을 묻은
젊은 남자의 비애를 떠올린다
흑해의 지류 같은 여자를 건너는 것은
신분이 다른 북쪽의 일,
구실밤잣나무의 발목 아래 고인 너는 따뜻해서
용천수가 솟아나온 너는 더 따뜻해서
비루한 아랫도리, 아랫도리로만 흐르는 물의 노래,
흘러간 노래로 반짝이는 물의 살결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아직도 검푸른 혈흔이 남아 있는 마음이
무르팍에 이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독한 사랑처럼
먼 바다로 떠나가는 남쪽
누구에게나 전설은 있지, 중얼거려 보는
내 얼굴의 남쪽
-강영은의 ‘쇠소깍, 남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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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도끼로 내려친듯 쩌억 갈라진 골짝이 있다. ‘산벌른내’다.
백록담 서남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 ‘산벌른내’를 거쳐 돈내코, 효돈천을 흘러 바다와 몸을 섞는 곳이 ‘쇠소깍’ 이다.
부잣집 무남독녀와 동갑내기 머슴의 이루지 못한 서러운 사랑을 전설로 품은 쇠소깍은 시인에게 있어 그리운 남쪽이고 살청(殺靑)빛 물결을 건너야 이를 수 있는 고향이다.
시인은 뭍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남쪽’ 이라고 물의 살결을 노래한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은 전설이 된다.
당신에게 그리운 ‘남쪽’이 있다면
쇠소깍에 와서 살청빛 물살이나 지독하게 바라볼 일이다. 한생이 섭섭하지 않게.
혹시 아는가.
‘흘러간 노래로 반짝이는 물의 살결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물으면 그 물결이 당신이라고 대답해 줄는지... (오승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