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시론詩論
낙엽들
너머의 새
2017. 1. 10. 09:16

낙엽들/강영은
산행 길에서 한 해의 가장 적막한 나무를 접사한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문장을 빌어 안부를 전송하는
가지들, 휑하니 허공을 줌업 시킨다
지난 계절은 나에게 너무 많은 낙엽을 요구했다
가장 용감한 낙엽은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낙엽은 여전히 거룩했다 가장 잔인한 낙엽은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낙엽은 퍽이나 온건했다*
내가 놓친 낙엽은 밤이 되어도 돌아올 줄 모르는데 외딴 마을에 도착한 불빛이 이슥토록 꺼지지 않는 것은
누구의 사모(思慕)가 빚어낸 언어일까
한 잎 낙엽이여, 결구 없는 詩여, 네 눈썹에 봄빛이 돋을 때까지 나도 한 그루 겨울나무로 있겠다
* 쉼보르스카의 ‘단어를 찾아서’ 패러디
『미소 문학』 201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