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해설

소멸되지 않는 백제의 빛 -문효치 시선집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너머의 새 2017. 1. 10. 09:35

소멸되지 않는 백제의 빛

                     -문효치 시선집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서평 /강영은

 

 

문효치시인이 활판본 시선 집,〈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를 상재했다. 제1시집 <연기 속에 서서>부터 최근(2010년)에 낸 <왕인의 수염>에 이르기까지 그간 상재했던 9권의 시집에서 엄선된 대표작들은 시인의 생애를 관통해온 시적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등고자비(登高自卑)의 마음으로 시인의 등단작을 앞서 음미해 본다.


 당신의 입김이/이렇게 흐르는 산허리는/산 빛이 있어서 좋다.//당신의 유방 언저리로는/간밤 꿈을 해몽하는/조용한 아우성의 마을과//솔이랑 학이랑 무늬 그려/도자기 구워내다/새벽이슬 내리는 소리.//오월을 보듬은 당신의 살결은/노을, 안개./지금 당신은 산 빛 마음이다.//언젠가 내가 엄마를 잃고/파혼 당한 마음을/산 빛에 묻으면.//청자 밑에 고여 있는/ 가야금 소리.//산 빛은 하늘에 떠/돌고 돌다가/산꽃에 스며 잠을 이룬다.  -<산 색(山 色)>전문-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위의 시에서 보듯, 전통서정을 주축으로 하는 그의 초기 시는 민족의 정한에 출발점을 둔다. 이러한 정한은 “빈가지에/ 그 울음소리를 동동 달아놓고 가”(감나무)는 새라든가, “가슴 깊숙히/ 날카로운 쟁기를 두고/ 밭을 갈고 있”(음악)는 시말의 움직임에서 보듯, 민족적 정서에 문학적 의장을 입힌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편, 이데올로기라는 명분을 지닌 세계의 횡포 속에서 자아를 응시하는 아픈 고백이나 역사에 대한 절망을 극복하려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시인의 개인사적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6·25전쟁 중에 부친의 월북으로 상처 입은 가족사와 연좌제에 걸려 부당하게 억압과 고통을 받아왔던 시인의 삶은 당대의 회오리치는 사회적, 역사적 현실 앞에서 마치 풍랑 속을 헤쳐 나가는 일엽편주와 같았을 터였다. 그 푸르고 젊은 날에 느꼈던 분노, 절망, 고독 등의 뜨거운 기록은 “게릴라전이 지나간/ 요새의 골짜기처럼/바람 부는 저 건너 언덕엔/ 피아의 창백한 의지”(연기 속에 서서)이기도 하며 “가오리연의 찢어진 살점은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원통히 압살壓殺당한 젊은 아버지의 흐느끼는 혼령”(병중病中1)을 보는 비극의 현장성을 재현해내는 한 편 “아스라한 동혈을 파 놓고 가버리는 꽃”(꽃1)과  같이 말이나 사물 속에 숨겨져 쉽게 보이지 않는 기의를 추출해냄으로써 언어 미학에 탁월성을 보여 준다.  

 

  칼이여, 쇠여, 네가 아직은 나를 죽이지는 못하였구나. 검은 기름에 젖어 닳아지는 불, 닳아지는 손. 소나기처럼, 태풍처럼 까끌까끌한 騷音을 몰아 쳐들어오는 번쩍거리는 쇠여. 뱃속에 가득 찬 소화불량의 찌꺼기. 誘惑의 혓바닥을 거느리고 날카로운 凶器의 날을 갈아대는, 그리하여 칙칙한 대숲의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陰凶한 手足처럼 넘쳐 오면서 오, 그러나 살의, 살 속에 사는 인간의 잔뿌리, 뿌리에 서려 있는 질긴 생명을 아직은 무찌르지 못 하였구나 閃光의 쇠여. -「閃光의 쇠여」 전문-


 칼과 쇠로 상징되는 폭력의 세계는 역설적으로 생명에 대한 믿음을 부각시킨다. 칼과 쇠는 흉악한 무기이지만, “살의, 살 속에 사는” 인간의 의지며 양심을 폐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온 개인적 비극이 민족적 정한과  어울려 초기시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면, 시인이 지닌 천부적인 상상력과 능력은 수레바퀴가 되어 고통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생생한 생명력을 지향하게 된다. 당대의 현실적 공간과 마찬가지로 소멸과 폐허라는 심정적 공간을 딛고 시인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게 되는데, 초기시의 후반부에서부터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백제시의 출현이 그것이다.


 삼국 중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화려한 문화를 창조했던 ‘백제’에 관한 시인의 천착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교통하는 백제의 광활한 영토를 보여준다. 현실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일련의 백제시편을 통해 시인이 추구하는 새로운 영토를 구축한 셈이다.  훼손, 인멸, 축소되어 버린 역사적 빈 공간을 주무르는 시인은 이제 자유자재의 상상력을 통해 시공을 넘나들며 <무령왕의 나무새>, <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 <백제 가는 길>, <남내리 엽서>, <계백의 칼>,<왕인의 수염> 등 1975년부터 30년이 넘는 성상을 ‘백제 시’에 몰두해왔다. 그 간의 성과로 시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서훈하기도 했다.


 그가 벤 것은 /적의 목이 아니다 //햇빛 속에도 피가 있어/해 속의 피를 잘라내어/하늘과 땅 사이/황산벌 위에 물들이고//스러져가는 하루의 목숨을 /꽃수 놓듯 그려 놓았으니//일몰하였으되/그 하늘 언제나/꽃수의 꽃물로 가득하여 밝은 데/이를 어찌 칼이라 하랴  -<계백의 칼> 전문-


 시인이 백제시를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해 속의 피를 잘라내”듯  자신의 혼속에 스며있는 시 정신을 보여주려 했는지 모른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듯한, 비장감마저 서려 있는 이 시는 허공을 베는 칼이야말로 시인에게는 허공을 베는 붓이라는 걸 상기시켜준다. 매몰된 역사의 죽음을 치유하는 한편,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는 시인에 대해  ‘백제와 현대를 잇는 교통의 시학’ 강우식 시인이 말했듯 이 말은 평화스런 나라를 구가하는 시인의 염원이 한국시사사에 족적을 남기는 열매로 맺혔음을 뜻하는 말이다. 시인은 역사가 지닌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역사와 하나가 되는 치열함을 보여준다. ”꽃이 있으면 뿌리가 있고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생기듯 화려함의 반대쪽을 이해하고 치유하자"는 시인의 말처럼  초월의 자유를 얻은 시혼은 역사의 구속력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날개를 달고 백제의 영토를 확장시킨다.  


 현 위에 새 한 마리 앉아/ 떨고 있다// 떨림 위에 황혼이 얹히고/ 몸부림이 올 때마다 섬광이 보였다.// 섬광 사이로 백제 여인의 치맛자락이/ 잠시 펄럭였다.// 울안에 서 있는 감나무에/ 붉은 감도 익고 있었다. // 장광의 장항아리/메주가 삭아 구린내를 풍기고/ 저녁연기도 잠시 보였다// 음계의 허름한 계단으로/ 현해탄의 물결이 올라왔다// 후딱 지나가는/ 섬광 사이로 -<백제시-쿠다라고도百濟琴>전문-  

 

 백제의 시공간이 국내를 넘어 ‘일본 속의 백제’까지 아우르는 모습을 보니 ‘백제 시 쓰기의 영역 확대’를 소망하는 그의 염원은 이제 ‘중국 속의 백제’까지 되 살려낼 일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느껴진다. 시인으로 하여금 이처럼 광활한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적 창조가 무엇에 기초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옥타비아 파스에 의하면, 시를 쓰는 행위는 상반되는 힘들의 얽힘, 즉 나의 목소리와 타자의 목소리가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으로 주어진다고 말한다. 이때 두 목소리의 경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어할 수 없는 무엇으로 바뀌는데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모호한 존재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이 모호성을 영감이라고 한다면, 영감의 신비가 자리하는 자리에서 시가 출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웅혼한 영혼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온 시인에게 있어 영감의 신비란 빙의 와도 같이 시인의 몸에 실린 백제의 혼이 아닐까, 어디든 가서 내려놓는 사랑의 빛 말이다.  


 사랑이여/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빛깔 없어 보이지 않고/ 표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전문 -


 그 황홀한 빛에 몰입하여 시 선집을 읽는 내내 눈이 부셨다. “네가 갈 곳/ 그 끝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사랑을 위해/ 어둠의 휘장을 꿰뚫어/ 깜깜한 바윗 속을 깨뜨려 버리고/ 힘으로 파도를 몰아가 ”(날아라, 빛)그 빛은 백제의 고결한 영혼이 되어 영원히 날아오를 것이다. 

 

-<시선 > 201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