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리뷰

황홀한 고수의 검광劍光/호병탁(문학평론가, 시인)

너머의 새 2019. 1. 8. 13:43

황홀한 고수의 검광劍光/호병탁(문학평론가, 시인)

                                                     - 강영은 의 『최초의 그늘』

 

 

 검객으로 말하자면 강영은은 고수 중의 고수인 것 같다. 그가 무당武當파인지 소림小林파인지 아미蛾嵋파인지 어느 파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짐작하건대 아홉 문파의 검법을 모두 섭렵하고 지금은 사문師門을 떠나 말 그대로 ‘무당파無黨派’로 자유스럽게 강호를 떠돌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의협의 검광으로 “몇 개의 산을 베어” 넘겼지만 “어둠을 가룬” 검객의 “ 종적은 묘연하다” 시집 『최초의 그늘』의 마지막 시, 시인에서 몇 마디 인용하여 시인을 그려본 말이다. “둥글게 허공을 베며” 나는 시인의 검광에는 “그리움의 날”도 “서럽게 운” 세월도 배어있다. 하기야 고수가 되기까지 검림劍林의 숲에서 어찌 베이고 다치고 울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런 것들은 “칼날에 토막 난 시공” 에 불과하며 시인은 이제 그의 검비劍鼻에 “하늘 한 귀퉁이” 를 “숭덩 떨어” 뜨리려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집의 머리말에서 “시야, 언제 내 밥이 돼줄래? 라고 무림의 고수답게 중얼거릴 수 있는 것이다.

 

  천야만야, 날을 벼리고 천길 벼랑 위로 솟구친/ 검 한 자루,/ 절대고독의 죽음을 가른다.

                                                                          -「시인」 마지막 연

 

  이런 시인의 결기는 글쓰기 스타일부터 다르게 나타난다.

 

  항해의 시작은 이러하니 바다의 얼굴을 어루만져 눈이 있음직한 부위를 파내니 두 개의 굴헝 밖으로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더라 쇄설물이 파도의 미간에 박히니 사람들은 그것을 별빛이라 불렀더라 별의 궤적이 물결을 안내하니 사람들이 별빛을 운구하더라//....//달의 호흡이 이와 같으니 이는 바다 밑창이 뚫렸음이라 달의 호흡을 밀물과 썰물이라 부르니 바다의 들숨과 날숨이라. 들숨인 곤이 몸을 뒤척여 붕새를 날려 보내니 이는 심해에 허파꽈리가 생겼음이라 서쪽의 수평선이 기울어져 바다의 안팎이 구분되니 사람과 사람들 사이 결계가 생기고 얼굴빛이 나누어졌더라 //....//이는 혼돈의 얼굴이 완성되었음이라  비로소 바다가 두 개의 눈동자와 두 개의 콧구멍, 두 개의 귓구멍과 한 개의 입을 지니게 되니 사람들은 물결이 혼융하는 바다를 혼돈이라 부르기 시작하더라 일몰이 귀를 낚는 저녁이면 싱싱하게 저민 죽음이 포구에 가득 들어차니 이는 항해의 끝이라

 

 위의 시는 일곱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항해의 시작” “항해의 끝” 그리고 “ 항해의 중간” 부분 세연만 인용한 것이다. 대서사시적 어조로 절대적 과거를 장중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사시적 절대 과거는 후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며 시초로, 단순한 시간적 범주가 아니라 최고의 가치 평가된 범주다. 그것은 절대적 완결성으로 그자체로 충분하며 어떠한 연속도 가정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따라서 서사지적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의 위치는 접근 불가능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위치로, 그 이야기는 존경에 가득 찬 후대인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즐겁고도 유익한 것’이라는 효용가치로 문학을 정의하지만 롱기누스는 문학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을 ‘숭엄미’로 본다. 설득을 당하고 안당하고는 자의에  따를 수 있지만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압도하며 다가오는 이 숭엄미는 독자를 황홀감으로 몰아간다. 황홀감은 그 자체로 무엇에 비할 바 없는 독자의 귀한 체험이기도 하다. 위의 시에서 웅장한 묘사는 바로 작가의 웅장한 상상력에 근거를 둔다.

 

 인간 안면의 칠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성서의 의고적 어휘와 어조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는 위 시는 우선 두 눈은 “바다의 얼굴”에 “눈이 있음직한 부위를 파내” 만들어진 것이고,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는 두 구멍에 박힌 부스러기들이 바로 별빛이 된다. 콧구멍은 “바다 밑창”을 뚫은 것이고 그“들숨과 날숨”이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된 것이며 이는“ 달의 호흡”과 같다고 설명한다.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진 바다, 그 바다의 “물결이 혼융”하는 것이 곧 “혼돈이다.

 

 위 시는 창세기의 일절인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라는 말처럼 어마어마한 사건이 한마디 말에 이루어진다는 ‘막막한 경이감’과 통한다. 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별빛 또한 형성되고, 숨구멍을 만드는 과정에서 밀물과 설물의 기원이 설명된다. 확실히 크고 위대하고 경이로운 것에 위압당하는 것은 “교훈과 쾌감”같은 현실적 효용가치와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

 

  이런 글쓰기 스타일은 개기일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첫 연만 보자.

 

   隱者의 두 손이 황홀한 우주를 불러들이니, 지평선 끝에서 돌연 방추차가 나타나 시간을 거꾸로 돌리더라. 어둠이 씨실과 날실을 풀어 허공을 베틀 삼으니, 어제를 숭배한 무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너를 내게 보내어 노래하게 하도다.

                                                                                                         -「개기일식」 첫 연

 

 어둠이 해를 물어뜯기 시작하는 현상을 방추紡錘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어둠이 해를 덮어가는 현상을 ‘베틀’이 어둠을 직조織造하는 것으로 비유하여 개기일식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방추, 시실, 날실, 베틀, 경금, 평직 교직, 능라, 겸견, 일광단, 등 비단 직물과 그것을 제직하는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여 일식현상 존체를 놀랍게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문체와 어조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다양하고 고유한 언어를 특유의 조직과 통합의 원칙으로 직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가 추구하는 심미적 신기神奇성도 능라무늬처럼 들어나게 된다.

 

 시집의 제목 최초의 그늘도 시, 무화과에서 견인된 것으로 부끄러운 곳을 무화과 잎으로 가리게 되는 인류‘최초’의 서사적 기원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마, 하지마, 두 마리의 짐승이 잎사귀를 흔드는 저녁/손바닥보다 작은 잎사귀는 최초의 그늘                   

                                                                                          -「무화과」 부분

 

 ‘모든 산자의 어미’가 금단의 열매를 취하고 지아비도 그녀를 따른다. 타부를 깨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이, 성애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며 감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인류'최초의 그늘‘은 손바닥보다 작은 무화과 잎사귀였지만 이’그늘‘은 이후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삶의 원초적 그늘이기도 하다.

 “모계의 혈통 따라 부족의 기원이 되었지만”“죽을 때까지 쑥 마늘을 삼켰지만”“여자가 되지 못 했다”고 시인은 단군 신화를 상기하게 하는 어조로 어머니의 여성성을 거론한다. 그런데 시인은 “어머니가 낳은 나는 아이를 쑥, 낳지도 매운 마늘을 좋아하지도 않는다”(새로운 토템)며 식물인 ‘쑥’과, 깊게 밀어 넣거나 뽑아내는 모양의‘쑥’을 절묘하게 병치시키고 자신이‘어머니를 가둔 토템“이라고 말한다.

 

신화적 사유와 서사시적 문체로 글을 쓰는 강영은의 스케일이 크다. 그는 마침내 “고독한 이마”를 가진 “세계의 지붕”을 꿈꾼다.

 

 나는 이제, 가도 가도 눈 밖에 보이지 않는 고독한 이마가 되었습니다. 무수한 바람을 잠재워야 하는 세계의 지붕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어머니라는 영원한 이름을 지녔습니다.

                                                  -「에베레스트」

 

 앞으로도 내공 깊은 시인의 칼은“ 무수한 바람을 잠재우며” 휘황한 검광을 발할 것이다. “눈밖에 보이지 않는”“설산의 고독한 이마” 처럼, 혹은 “아무르. 아무르 아무리 불러도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아무를 강가의 멧노랑나비떼처럼,

 

   - 문학청춘 201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