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꾸는 꿈, 함께 꿈꾸는 인류
시인이 꾸는 꿈, 함께 꿈꾸는 인류
이 혜 선(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시인은 꿈을 꾸는 사람이다. 시인의 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마음속에 언제나 커다란 이상과 갈망을 품고 이곳 아닌 저곳을 꿈꾸고, 이것 아닌 저것을, 지금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을, 불완전한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고 갈망하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은 언어로 꿈을 꾸기에 시인에게 오면 불가능이 없다.
시인은 이상과 어긋나는 현실은 끌어당겨 자신이 꿈꾸는 세계로 만들고〔世界의 自我化〕, 또 자기가 되고 싶은 상황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자아를 대상 속에 투사시켜 동일시를 이룬다〔自我의 世界化〕 그래서 시인에게 불가능이 없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로 세계를 창조해내는 언어의 조물주이다. 소설이 갈등구조의 문학이라면 시는 동일시의 문학이다.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의 꿈과 일체감을 느끼며 시인의 꿈을 따라가며 함께 꿈꾸고 함께 추억하며 교감하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창조에 동참한다.
시인은 일생동안 꿀과 꽃가루를 모아서 영혼의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스스로 자기를 연소시키며 끝없는 탁발의 길을 걷는 수행자이다. 시인의 시 한 편 속에는 그가 평생 동안 걸어온 지상의 길들과, 그가 그 길 위에서 방황한 시간들과, 그가 먹어서 그의 몸과 정신을 이루고 있는 음식들과, 그가 읽고 체험해온 수많은 책과 영혼의 대화가 꽃 피어 있다.
바닷가 바위 속에 숨겨놓은 알 몇 개의 흔적만 들켰구나. 일억 년 전 내가 술 래였을 때, 찾지 못한 어미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가 알만 몇 개 낳고 사라졌구나. 내가 술래 되어 ‘꼭꼭 숨어라, 발가락이 보인다’를 외쳐온 일억 년의 세월이, 바다가 보이는 코리아의 거대한 바위 속에 알 몇 개만 낳아 놓고 어디로 가 무슨 꿈을 꾸며 숨어 있는가. 2013년 청명한 가을, 노랗게 핀 감국 꽃향기가 그리워 찾아 헤매던 날, 일억 년은 화석이 된 채 깨어진 알 몇 개의 흔적으로만 남았구나. 사라진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여, 다시 알에서 깨어나와 술래에게 일억 년 전 네 모습을 보여 다오. 너에게 일억 년은 찾지 못할 아득한 세월이지만, 나에게 일억 년은 지금 여기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하구나. 숨어 있 는 어미 공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여
-신규호「술래가 되어 공룡을 찾다」전문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 헤매어 왔을 것이다. 눈앞의 현실 너머 이상향을 꿈꾸고, 실현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완벽한 이데아(Idea)를 추구해왔다. 그가 처해있는 세계가 누추하고 남루하면 그럴수록 그 꿈은 더욱 커지고 깊어지고 간절해져, 나날이 발전하는 인류문화와 문명을 형성해왔다. 눈앞에 형상으로 실현되는 도시와 문명과 기계와 편리함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더러 어떤 꿈은 종교를 낳고, 어떤 꿈은 철학을 낳고, 예술을 낳고 문학을 낳았다.
지금 이 시의 화자는 지구상에 있는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의 바닷가에서 발견된 공룡알의 화석을 보며, 아득한 그 시간 동안 찾지 못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를 찾으려고 일억 년 동안 헤매는 술래가 되었다. 시적화자가 스스로 술래가 되어 일억 년 동안 찾으려고 애써 온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일억 년’은 계량할 수 없는 ‘아득한 세월’이기도 하고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하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의 생각에 따라 바뀌는 카이로스(kairos) 의 시간 속에 우리는 전혀 체험해 보지 못한 먼 시공간을 순식간에 체험하기도 하고, 거대한 생명의 꿈, 실현할 수 없는 이데아의 꿈을 일생동안 아니, 대대로 물려받아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 꿈을 우리에게 다시 꾸게 해주는 ‘알 몇 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2013년 청명한 가을’을 넘어서 그 꿈은 인류가 존속되는 한 영원히 지속되며 우리의 영혼을 남루한 현실로부터 들어 올려 고양시켜줄 것이다.
얼어붙은 잠 속을 헤매는 손과 발의 불화, 지저깨비 같은 꿈에서 깨어나도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꾸만 죽어나가는 허파꽈리 같이 낡은 木札 속에는 폐허가 된 집 있었다 달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불 을 붙이고 빨갛게 불꽃이 피면 농악을 치며 불이 꺼질 때까지 춤추던 달의 집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는 하늘 끝까지 올라가 달을 끄슬리던 사내, 타오르는 불꽃이 진 데를 밟을까 애간장을 졸이던 그믐달 같은 계집 있었다
아아, 지상에는 달을 높이 들어 올리는 밤이 있었다
-강영은 「정읍사, 그리운 달집」부분
'고려사' 악지 권 24 백제 조에 선운산, 무등산, 방등산, 정읍, 지리산 등 백제오가(百濟五歌)가 노래제목만 전해지고 있는데, 이중 '정읍사'는 유일하게 연행(演行)형식과 더불어 그 가사가 '악학궤범'에 전해져 후세인들이 백제가요의 원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정읍사라는 노래와 함께 무고(舞鼓)라는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 시의 시적화자는 지금 「정읍사」를 읽다가 잠이 들어 ‘백제의 어느 마을’에서 꿈을 꾸고 있다. 그는 꿈속에서 정읍사 속의 사내가 되고 정읍사를 노래하는 계집이 되고, 농악을 치며 춤추던 마을사람이 되고, 무엇보다 정화수 그릇마다 흘러넘치는 ‘물빛 달’이 되었다.
우리 겨레가 정월 대보름에 마을마다 달집을 짓고,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달집에 불을 붙이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소원을 빌더 달집태우기 민속에는 꿈과 희망과 기원이 있었다. 그 속에는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젊은 아낙의 꿈이 있고, 부자가 되고 싶은 기원, 가족건강과 화목을 기원하는 현실적 꿈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활활 타오르는 가슴 속의 불길로 ‘하늘 끝까지 올라가 달을 끄슬리던 사내의 꿈’이 있고, 그렇게 ‘타오르는 불꽃이 진 데를 밟을까 애간장을 졸이던’ 이 땅 여인네의 염려와 소망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꿈과 소망을 위해 밤마다 새벽마다 ‘받쳐 든 정화수’에는 꿈처럼 ‘물빛 달이’ 흘러넘쳐 화답해주었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동안 우리겨레에게는 ‘달을 높이 들어 올리는 밤’이 있어 끝간데 없는 꿈을 꾸며 스스로가 달이 되고 꿈이 되는 아름다운 삶을 이어오고 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렇게 한마음 한몸이 되는 것을 보면
여름 끝자락
한나절에 마주 앉아서
빨간 고추를 다듬을 때
은돈이 열량이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한바탕 시원하게 너털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이제는 별볼일도 없는
금돈 열량의 무게 속에서
침몰된 젊은 시절의 꿈을 일깨우면서
그래도 그 행복했던 그림들을 떠올리며
석양에 물드는 은발 속에
하얀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강준형「고추를 다듬으며」부분
이제는 묻혀버린 ‘젊은 시절의 꿈’을 일깨우는 것도 시인의 꿈꾸기 중의 한 방법이다. 인간에겐 꼭 미래의 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노년에 젊은 시절, 푸른 청춘에 꾸었던 꿈을 다시 일깨워보며 추억에 젖는 것도, 그리하여 노년의 따스한 가을햇살에 젖어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꿈꾸기인가. 이제는 아득히 잊혀져 물결 아래 가라앉아 있던 사랑의 시간들, 희망에 부풀던 시간들을, 그 아름답고 힘차고 푸른 시간의 그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때의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아서 ‘하얀 웃음’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독자 역시 이러한 시를 읽으며, 시인의 꿈을 따라가며 저마다 자신의 푸른 날들을 되새기고 일깨우며 그 아름다웠던 그림 속에 자신을 다시 세워보고, 그날로 돌아간 행복감에 입가에 스르르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이른 아침
새들이 높은 가지 위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수 천 명이 잔가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대표자 회의는 아닌 것 같다
의견이 분분한지 무척 소란스러웠으나
의자를 박차고 나온 새들은 없었다
회의가 끝나자 새들은 바람을 일으키며 질서정연하게 흩어졌다
나무는 잎사귀에 일일이 회의록을 기록한다
새들은 낮에 끼리끼리 분과별 모임을 가지는 것 같다
노을이 지면 다른 나무로 장소를 옮겨 다시 격론을 벌인다
그들은 민주적이다
-최복림 「 새들의 민주주의」부분
「 새들의 민주주의」는, 우리 시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정치현실의 답답함을 새들의 세계를 끌어와 알레고리기법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시인의 꿈은 ‘민주주의’다.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의자를 박차고’ 나오지 않고 ‘단상에서 멱살을 잡고’ 싸우지도 않고, ‘의사당 밖에 텐트를 치고 단식투쟁’을 벌이지도 않는, ‘혼자 장시간 떠드는 의사진행 방해’도 없는 질서정연한 회의, 낮 동안 ‘끼리끼리 분과별 모임’을 갖고 충분히 토의한 후에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장소를 옮겨가며 격론을 벌이는 민주적인 회의가 시적화자가 바라는 ‘민주주의’의 꿈이다. 시의 후반부로 가면서 다소 직설적인 정치비판이지만 직접적인 비판 없이 새들을 등장시킨 우유법에 의해 시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옹벽 한 편 비천상의 모습이 희미하다
퇴색해질 형상을 기어이 새겨둔
화공의 속뜻이 궁금하다
어쩌면 그 자신 꿈의 행방을
아득한 높이로 걸어두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역사의 뒤안길을 헤맨 사나이가
때로는 새로운 횃불을 내걸게 한 하나의 계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권기호「유물발굴」부분
권기호시인의 「유물발굴」역시 ‘퇴색해질 형상을 기어이 새겨둔/ 화공의 속뜻’을, 아득히 오래 전의 선인들의 꿈을, 오래된 유물을 통해 읽어내려 애 쓰고 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서 흔적조차 알 길 없고, ‘속절없는 부호’ 몇 낱으로 쓸쓸히 내비치고 있지만 ‘한 때는 당당했던 문양’과 비록 부식되었다 해도 화려했던 ‘청동거울’의 모습을 통해 ‘한 시대의 중심’을 읽어낼 수 있다. 선인들의 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옹벽 한 편 비천상의 모습’으로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수많은 후손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시인의 가슴에 새로운 꿈이 피어날 ‘단초’를 제공해주고 ‘굳어져가는 내 가슴의 물관부’를 다시 흐르게 하는 횃불을 내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은 언제 어느 곳에서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일억 년 전의 공룡이 낳아놓은 공룡 알의 화석 앞에서, 이제는 퇴색되고 부식되어 형체조차 희미한 선인들의 유물 앞에서, 또는 노처와 마주앉아 고추를 다듬으며 옛 추억에 잠기는 시간에도 시인은 꿈을 꾼다.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화해와 질서와 조화의 사회를 위해서도 시인은 꿈을 꾼다. 우리 겨레의 민속놀이 속에 ‘달을 높이 들어 올리는’ 꿈이 있으며, 이러한 시인의 꿈꾸기는 인류가 존속되는 한 영원히 지속되며 우리의 영혼을 남루한 현실로부터 들어 올려 고양시켜줄 것이다.
<시문학>2014.2월호 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