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하늘을 쳐다본다/ 고형렬
시퍼런 하늘을 쳐다본다/ 고형렬
하늘의 둔기가 내 머리를 내리칠 것 같다
찰나처럼 한 순간 그 고통이 지나간다면
그 둔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내겐 맞는 말이다
둔기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순간이 있다면
그때다 싶게 허공을 광속으로 달려오라
둔기여, 내 머리통을 단번에 박살내어버려라
수박처럼 부풀어 오른 머리통을 가만히 두지 말아라
둔기는 저 멀리 하늘로 두둥실 건너가고
그대 현실은 여름 한철 태평성대로 지나갈 것이다
그네처럼, 아무도 없는 가을 그네처럼, 그래
텅 빈 내 머리를 스쳐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소슬바람에 출렁거리는 둔기여, 거대한 내 둔기여
낡은 궤도와 낡은 긴장을 찢어 불태워버리고
나의 모든 장기를 빼내 천공에 해초처럼 내널것
지구가 걱정없이 건너갈 수 있도록 말이야
저 마른하늘에 천둥 번개가
오늘도 텅 빈 하늘을 쳐다보오 갈급한 내 둔기여
공포에 질리는, 눈물겨운 단 한 번의 둔기여
어마어마한 날카로운 광속의 둔기 하나
시평 2008, 가을호
위 시 속에 나타나는 둔기는 마른 하늘의 천둥, 혹은 번개의 은유이지만 고통 또는 고통의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둔기는 '하늘의 둔기'인 은유적 의미에서 '나의 둔기' 로 의미를 확장 변주해간다. '낡은 궤도와 낡은 긴장의 지구'가 무사히 계절을 건널수 있을 때까지, 아니 내가 세상을 건널 수 있을 때 까지, 詩라는 세상을 건널 수 있을 때까지, 이 시를 통해 시인은 고통을 적극적으로 껴안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고통을 견디는 힘은 무엇일까? 고통과 맞서 싸우는 용기, 아니면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는 인내심일까. 앙드레 도텔은 '인생의 어떤 노래'에서 “살아야만 했어. 너나 나나. 뭣 때문이냐고?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그냥 파도처럼, 자갈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돌들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살아야 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고통은 첨예하고 날카로운 무기이지만 고통만큼 예민하게 살아있음은 인식케 하는 무기도 없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신을 찾으며 고통 속에 있을 때 아픔을 보다 뚜렷이 감지해낸다. 무사안일과 안락주의로 나태해진 삶은 고통을 만났을 때 정신이 번쩍 든다. 고통에 처한 이들은 그 고통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욕망으로 활활 점화되기도 한다. 삶은 그렇게 고통의 순간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고무되기도 한다. 고통은 그러므로 삶의 극약처방이다.
시의 정점에 다다를 때까지 극한의 길을 감수해내겠다는 열정의 메시지에 젖어든다. 지극한 염결성으로 둔기를 날카롭게 벼리고 있는 금속성 울림이 광대무변의 서정적 울림을 변주하면서 나의 둔기인 머리와 심장을 내려친다.
무엇이든 고통은 끝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도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지나가기 마련인 것, 우주 율에 비한다면 찰나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대 현실은 여름 한철 태평성대로 지나갈 것이다 그네처럼, 아무도 없는 가을 그네처럼, 그래 텅 빈 내 머리를 스쳐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소슬바람에 출렁거리는 둔기여, 거대한 내 둔기여"라고 말한다.
그러니 둔기여 오라, 와서 둔한 내 머리통을 박살내어버려라 . 나 기꺼이 고통과 맞서 싸우려니.................../ 강영은
정표 예술 포럼 무크지" 곷이 바람의 등을 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