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신작

고사은거도(高士隱居圖)

너머의 새 2019. 4. 1. 12:28


고사은거도(高士隱居圖)/강영은

                    -종이에 담채, 102.7×60.4cm, 간송미술관 소장.

    


뾰족이 솟은 산과 늙은 소나무에 둘러싸인 한 칸 누옥이 없었다면,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삼은 

옛사람도 옛사람을 그린 화가도 옛사람을 품은 나도 없었으리라. ​

붓끝에 먹을 묻혀 밤낮으로 그린다 해도 시냇물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다면, 나는 그림의 가장자리에도 닿지 못했으리라.

날카로운 가위가 흰 종이에 담뿍 든 저, 풍경을 잘라 버린다면 누가 나를 마중할 것인가.


녹 낀 구리 반지를 맡길 이 없으니 마음에 은거하는 사람은 없어라.


눈속에 핀 생각에 매료되어 백년가약 맺은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족자 안에 있는가, 족자 밖에 있는가, 

산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옛사람을 불러온 나의 관혼상제는 사람을 벗어날 줄 모르니 나는 자연을 낳을 수도 없어라.




『서정시학』 2018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