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신작
순간의 나무
너머의 새
2019. 6. 21. 21:56
순간의 나무
강영은
앗, 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ㅇ와 ㅏ와 ㅅ이 제각각의 속도로 튀어나갔다 분절음에 틈이 생겨난 순간, 구경꾼이 몰려오고 엠블런스가 달려왔다
거기에서 여기로 나를 밀어낸 찰나의 얼굴 본 것 같은데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처럼 폭풍우에 휘말린 사람처럼 내가 사라졌다 으르렁대던 이전이 사라지고 이후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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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건 흙투성이 아래로 주소나 장소를 옮긴다는 말, 두 발의 권리를 공중으로 이전하는 나무의 말이어서 벌어진 공간과 시간 사이 붉은 피를 지닌 나무가 자라났다
순간이란 얼마나 먼 거리인가, 내가 사라질 때까지 나를 깨트리지 않는 거울처럼
여기에서 거기까지 걸어갈 길이 순간일지 모르지만 공기주머니를 안은 나의 보금자리와 벌레의 집은 동일하고 햇빛에 세금 매긴 나의 낟알은 여일하니 고요히 나를 비추는 나무는 얼마나 관대한가,
죽음과 삶이 서로를 비추는 순간에도 순간의 영원, 영원의 순간 같은 나의 별빛은 돌아오지 않았으니 고요히 별빛을 매단 나무는 얼마나 다정한가,
『문예 연구』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