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늘

피아노

너머의 새 2019. 8. 20. 09:02




아노/강영은


 

허공이 들어가는 문인지 나가는 문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딱딱하게 굳은 페달을 한꺼번에 밟는 종아리와 관 속을 기웃거리는 다리

 

희고 검은 건반들은 더 빨리, 더 높이, 소리가 되길 원하지만

 

내가 모르는 음역이 있는 것인지 당신은 푸르스름하다

 

당신의 귀가 최고음을 낼 때도 허공은 성장하거나 멈추는 일이 없는 계단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늘 그 앞에서 떠돈다

 

검고 흰 뚜껑을 열고 당신 속으로 들어가는 손가락과 나오는 손가락

 

은빛 날개를 지닌 당신과 나는 계단 끝에서 만난다

 


시집 <최초의 그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