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집 /이윤학
외딴집 /이윤학
늦은 꽃을 피워 서둘러 열매를 매단 대추나무
아래 걸린 양은솥뚜껑 둘레에 수증기 물방울들이
주렁주렁 열린다. 장작연기와 수증기가 윤이 나는
풋대추를 문지르고 대추나무 주름을 더듬고
이파리를 간질이고 서로 어울려 먼 길을 떠난다.
할아버지가 짐자전거 찜통에 얻어온 가든 음식물찌꺼기
푹푹 끓어 넘쳐 양은솥 둘레에 개죽 국물이 타들어간다.
양은솥 안 수없이 피고 지는 보조개 자국
개죽 냄새가 식으면 늘어진 젖을 들고 일어난 어미 개가
고개를 들고 짖을 것이다. 자라지 않은 꼬리를 흔들며
강아지들이 양은솥 주위를 돌고 또 돌을 것이다.
양은솥 아궁이 불씨가 지기도 전에 할아버지
눈길로 이어진 별들이 흩어져
외딴집 하늘에 돋을 것이다.
월간 『문학사상』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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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펜화처럼 섬세한 언어로 그려진 한 폭의 세밀화다. 마치 박수근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집과 나무, 절구질하는 아낙네, 집을 지키는 노인, 아기 업은 소녀 등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암벽에 음각하듯 화폭에 아로새김으로써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박수근 화백이 한국인의 서민적 생활상과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해낸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과 진실한 삶의 내면을 원고지에 오롯이 담아낸 이윤학의 시에서도 거친 듯 소박한 한국미의 전형이 느껴진다.
‘외딴집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출산을 마친 어미 개를 위해 짐자전거 찜통에 얻어온 음식물찌꺼기로 끓이는 개죽' 과 같은 평범한 듯한 서사 구조이지만 우리 자연의 풍토와 연결되는 질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늦은 꽃, 양은 솥, 장작연기, 아궁이, 짐자전거, 개죽냄새’ 같은 시적 이미지들은 대상을 더욱 섬세하게 파고든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묘사는 서정시의 장점이다.
이러한 서정시의 본류에서 잃어버린 한 시대의 감정을 읽는다. ‘양은솥 안 수없이 피고 지는 보조개 자국/개죽 냄새가 식으면 늘어진 젖을 들고 일어난 어미 개가/ 고개를 들고 짖을 것이다’‘자라지 않는 꼬리’처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사라져버린 21세기의 비극을 아프게 되새겨 본다. 생명의식이야말로 자아와 세계가 합일되는 서정의 극점이다. '양은 솥 아궁이 불씨'가 '외딴집 하늘에 돋'아나 듯 사랑이 있는 한 외딴 집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강영은
『2014 시인들이 뽑은 좋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