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케(tuche)에 대한 소고(小考)
투케(tuche)에 대한 소고(小考)/강영은
바나나를 입에 물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는 건 몸에 좋지
등이 꼿꼿하게 펴지거든
헤엄쳐온 생각을
혀로 핥는데
입속으로 사라지는
아, 바나나
긴장도 희열도 없는
바나나를 씹으며
바나나에 닿는다
슬픔 따위와 이별하듯
씹혀주는 바나나
즙액도 씨앗도 없는
열매의 거만함을 생각하다가
종족에게서 멀리 떠나온
외로움에 닿는다
갓 태어난 무덤 같은
아, 바나나
철학자처럼
게걸스러운 날들과 헤어진
바나나 껍질은 이빨에 좋다
이빨에 묻은 얼룩을
하얗게 닦아 준다
죽음 뒤엔 무엇이 남는지
말하지 않는 바나나
껍질만 남은 계단을 오른다
우연히 식탁에 놓여 있던
아,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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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
시적 만남은 대개 우연히 이루어진다. 이 우연은 오토마톤인가, 투케인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는 기표를 통해서 주체를 규정하고 의미를 만드는 상징적 질서의 원리로서의 우연인 '오토마톤'(automaton)과 의미화 너머에 있는 실재와의 만남을 뜻하는 우연으로서의 '투케'(tuche)로 나뉜다.
오토마톤이 주체를 규정하는 상징적 질서의 구조였다면, 투케(tuche)는 이 질서 너머에 있는 순전히 임의적인 우연이다. 보통 필연(성)의 대립어로 사용되지만, 꿈을 방해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이 우연은 의미화와 무관하고 실재와의 만남을 그대로 구현한 외상적 사건이다.
시의 제목을 짓는 일 즉, 시를 쓰고 난 다음에 제목을 짓느냐, 제목을 쓰고 난 다음에 시를 쓰느냐 하는 고민도 이 두 명제가 관여한다. 시의 흐름에 내맡기는 일이 다반사인 나로서는 시속에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하기보다 시가 꿈꾸는 상징체계의 향방을 좇는 편이다. 이 시는 그 행로의 끝에서 만난 단편적 고찰이다.
우연히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바나나를 집어든다. 바나나는 먹기에 편리하다. 껍질만 까면 되는 과일이므로 바나나를 먹으면서 운동을 하는 일 역시 어렵지 않다. 바나나와의 우연한 만남은 여러 연상을 불러온다. 바나나는 흔히 남성의 성기로 은유된다. 때문에 바나나를 먹은 일은 에로틱한 사랑을 연상시킨다.
사람의 본질은 죽음을 욕망한다. 비로소 바나나의 본질에 닿는다. 바나나의 외로움, 바나나의 죽음은 게걸스러운 날들을 표상하는 인간의 욕망일 뿐, 욕망의 대상이 되는 실재를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나, 다행히도 바나나 껍질은 이빨을 표백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죽음 뒤에도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바나나의 상징체계를 변주하는 실재는 상상 속에 있는 가, 우연히 만난 실체 속에 있는가, 무의식 속에 흘러나온 바나나 송을 쓰고 나니 바나나를 먹은 일이 결코 우연스럽지 않다. 이 시를 읽는 당신도 필연전인 만남이다.
『시에티카』 2020년 상반기호 '시로여는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