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신작

베겟머리 송사

너머의 새 2021. 11. 23. 22:07

베겟머리 송사/강영은

 

  숏커트를 한 나무들이 지면에 즐비해요 전기톱을 실은 트럭이 추억의 가지들을 쳐냈다지요

 

  오소리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 돋은 오늘 새벽엔 추억에 올가미를 매단 박새가 느티나무 둥치에 감쪽같이 새끼를 깠대요 난생의 둥근 울음들로 공원이 떠들썩했대요

 

  공원 지나 푸른 미용실 유리창 너머 엊그제 자살을 시도한 젊은 벚나무의 우울증에 대해 입소문이 분분해요

 

  미용실에 통째로 들어앉은 벚나무의 사인(死因) 타살일지 모른다고, 때 없이 찾아온 남자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나요

 

  태양이 무슨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구름이 유리창을 여러 차례 들락거렸다는데 미용실은 하루종일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만 퍼머했대요

 

  시간을 너무 세게 코팅했다나 봐요 구불거리는 자줏빛 노을이 목덜미에 흘러넘칠 때, 더이상 자라지 않는 발목이 골목을 끌고 네거리 쪽으로 사라졌대요

 

  사춘기 고양이가 가출하는 밤이에요 금일 휴업, 내일 폐업, 쪽지를 붙인 푸른 미용실에 가보셨어요? 밤의 속눈썹에 걸린 초승달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는데

 

  여보, 벚나무가 앉아있던 푸른 미용실을 기억해 주세요. 그녀의 하루를 갉아먹던 벌레가 누구였는지, 벌이었는지 나비였는지,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질 때까지 살아있자고 맹세했던 나였는지 당신이었는지 삶과 죽음의 거리가 모호해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우물 뚜껑을 덮었잖아요

 

  먼 별빛이 두레박 내리는 소리, 찰박거리며 우물물 퍼 올리는 소리, 귓바퀴에 감기는 혼몽에 잠을 설쳐요

 

  여보, 머리를 맞댄 이 베개가 우주(宇宙)라니, 우주를 유영하는 잠처럼 내게 오는 별빛을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시와 사람』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