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플의 사과밭
마리우플의 사과밭/강영은
닫힌 문을 억지로 밀고 들어서는
너를 본 순간
썩은 사과를 한 손에 든 마녀를 본 것처럼
깜짝 놀랐어,
너의 미래가
나의 미래인지 모르지만
죽음을 향해 자연스럽게 문을 여는
세계를 잃어버린 탓일까,
아침 대신 사과를 먹으려고
사과 껍질을 벗기는데
귓가에 들리는 포성과 사람들의 울부짖음
뒹구는 사체 위, 주인 잃은 개들이 헤매는데
죽음 같은 건 도처에 널려 있잖아,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가 격리 중인 탱크를 데리고
기침과 고열에 뒤섞인 총을 앞세워
사과밭의 미래를 따져 묻네
그때, 나는 순식간에
손에 든 푸른 사과가 썩어가는 걸
본 것 같았어,
아무도 몰래 먹는 사과도 아닌데
사과에 총을 겨누다니!
미쳤나 봐, 이럴 수가 있을까?
썩은 사과를 제대로 읽기 위해
나무는 썩은 부위에 문을 달지
그 문이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진실(眞實)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데
정물화처럼 재해석한 사과는
썩지 않는다고,
너는 쟁반 가득 담긴 붉은 사과를 보여주네
썩은 사과를 오독(誤讀)한 문장은
비유(比喩)의 정품(正品)이 아니라고
세상은 말하지
뜨거워진 땅과 바다를 건너온 붉은 곰처럼
너는 포연으로 가득한, 죽음으로 가득 찬,
21세기의 봄이라고, 노래하네
사과를 먹기 전
사과꽃 피는 계절을 수정하자
마리우플, 우리들의 푸른 사과밭이여,
나는 이곳에서 사과를 먹고
그대는 멀리 있지만
가책 없이 죽음을 맞이해 온 날들을 사과하네
우리들의 눈물, 마르지 않는 흔적이
열매에 맺힌다 해도
마리우플, 우리들의 푸른 사과밭이여,
아무리 짓밟혀도 그대는
다시 살아나는 나비들의 천국이라고,
삼각형의 미래를 탈고(脫稿)하네
『문학의 오늘』 202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