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새

간격

너머의 새 2023. 9. 5. 09:35

 

 

 

간격/강영은

 

 

적금을 해약하고 근처 식당에서 월남쌈을 먹는다. 피망과 오이처럼 당신과 마주 앉아 느끼는 입맛은 미완성의 재료보다 높은 가성비(價性比),

 

침묵과 침묵 사이에 놓여있는 포크를 들었을 때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구간이 시작된 것처럼 당신은 자꾸 콧물을 훌쩍이고 돌기 돋은 혀는 쓰디 쓴 미각을 꺼낸다.

당신은 얼마나 먼 거리에 놓여있는 포크인가,

포크 든 오른손이 테이블 아래로 떨어질 때 창자 속으로 떨어진 것은 재료들의 삶도 죽음도 아니었다. 식용 꽃봉오리에 얹혀있는 내 눈이었다.

 

그때 나는 먹이사슬에 매달린 짐승처럼 휴지를 꺼내 조심조심 눈을 닦았지. 손의 관습도 습관도 아닌, 포크에 묻어 있는 공포를 지우는 일이었지.

 

바닥에 눕힐 때마다 당신은 죽여 준다고 말했지. 생의 절정을 바란 건 아니지만 당신보다 바닥이 먼저

보인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고층 빌딩 창문에 매달린 사람에게도 기중기에 목을 매단 사람에게도 공중보다 바닥이 먼저 다가왔을

뿐, 죽음을 바라보진 않았을거야,

우리는 진작 사후 세계를 보고 있었던 거야

계산하고 나가자,

오래 전 외삼촌이 월남에서 돌아왔듯 우리는 쌈값을 내고 사지에서 돌아왔지,

생이 불현듯 내게로 왔듯 죽음 또한 그렇게 온다면, 포크는 여전히 식탁 아래 남아 있을까, 바닥이 포크처럼 쥐어진다면 당신과 나의 간격은 얼마나 더 넓어지는 걸까,

 

 

『현대시』 2022년 10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