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새
숲
너머의 새
2023. 9. 7. 09:29

숲/강영은
너는 한 번도 나를 마중 나오지 않는다. 등을 돌리거나 달아나지도 않는다. 나의 기분을 판단하거나 분석하지도 않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 대로 생각의 숲을 이룰 뿐, 너는 나를 간섭하지 않는다. 빗소리에 잠겨 걸을 때도 낙엽 진 길을 밞고 간 사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만목(蔓木)의 자세를 꿈꾸기 때문일까, 칡넝쿨처럼 엉켜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바람 부는 세상이 온통 굽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키 큰 교목을 죽이고 그렇게 너를 의지하다 보면, 관목에 걸려 바둥대는 새처럼 나도 울게 되는 것일까,
너는 수만 마리 물고기 떼를 이끌고 온다. 쏴아. 쏴아이~, 적도(赤道)의 결계를 바꾸는 물결 소리로 윤슬에 빛나는 바다를 뒤집는다. 그럴 때 나는 소리에 갇힌 섬이 된다,
고단한 사막이 너를 등지고 걸어나간다. 우연히 부딪힌 초라한 생각에 나는 그만 무서워진다.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길이 있다는 것 외에 너의 표정과 감정을 알지 못한 나는 사람에게 닿는 길을 알지 못한다.
쏟아지는 빗속에 오래도록 서 있었는데 마주 오던 사람이 손을 내민다. 안녕하세요? 입과 귀를 연 우리는 서로의 나무가 된다. 외로움이 나무를 키우는구나!
너는 나의 육신을 흠향하고 나는 너의 침묵에 귀의(歸依)한다. 너는 나의, 새로운 종교, 연두빛 성전(聖殿)이 하늘거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