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신작
개불알꽃
너머의 새
2025. 4. 2. 13:40
개불알꽃/강영은
우리 집 개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 두 다리에 쏠려있다. 내 주위를 맴돌며 어떻게 한판 붙어볼까, 틈을 노리는 것인데 한 눈 파는 사이, 내 다리를 끼고 오르락내리락, 시소 탄다.
볼썽 사납다고, 야단하는 식구들 성화에도 잽싸게 다리 붙드는 솜씨는 두레 밥상을 감추는 밥상보처럼 한 경지를 이룬다.
졸지에 기둥서방 된 다리가 외면할 때면 귀를 축 늘어뜨리고 맥없이 눈망울을 굴리며 하염없이 앞만 쳐다보는 것인데
투명한 수정체에 실금 같은 것이 어리면 그 실금이 강물 같다는 생각에 사물의 각처럼 뾰족해진 마음도
세상의 모든 다리 아래 강물 흐르는 것 하며, 세상의 여자들이 다리를 지나 엄마가 된다는 생각의 묘수에 빠져 관용(寬容)에 다다르는 것이다.
사람도 가죽을 벗어 던지면 죽은 개처럼 땅에 묻힐 뿐인데, 맨몸의 땅이 꽃을 피우는 까닭이 무얼까,
시리고 아픈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꽃 피던 젊은 한때가 통증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인데
공격적인 모습 다 버리고 몸을 푼 새댁처럼 웅크려 있는 개를 보는 날에는
시베리아 벌판을 하염없이 걸어가다 바다로 사라진 죄수처럼 파도 위로 솟아오른 사할린섬, 외딴 산자락에 드물게 피는 개불알꽃 한 송이라고
폐결핵에 걸린 멸종(滅種)의 마음을 가만히 꽃병에 꽂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시와 문화』 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