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의 항아리
수석유화(瘦石幽花)
너머의 새
2025. 4. 14. 20:29
수석유화(瘦石幽花)/ 강영은
- 강세황,「표옹서화첩」종이에 수묵, 각 폭 28,5 x 18,0 cm, 1878,
괴석의 모양은 오래 전에 죽은 짐승의 골반 뼈처럼 바짝 삭아 손아귀에 조금만 힘을 주면
부스러질 듯 야위었다 구멍까지 뚫려 있으니
괴석의 가치는 추할수록 아름답다
구멍 뚫린 말, 주름진 말, 혹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말이라 해도 기름기를 쏙 빼야 옹골차게
야윈 입술을 가질 수 있다
괴석의 모양을 빌려 말하자면 그 기이함이 침묵의 참 모습이라는 것
얼굴쯤이야 아무려면 어때, 괴석의 틈에 끼어 자란 꽃의 표정은 옅은 먹빛이다 흙 없는 틈
바구니에 피어도 낯이 부드럽다
흙을 만나고 가는 꽃이 미소 지으면 도리어 일이 많다고, 차갑고 맑은 입술을 돌 속에 담은
나는 마른 돌뒤에 숨은 꽃
딱딱해진 돌 속의 피를 내뿜는 기흉의 꽃일지 모르지만
어느 화가의 손끝에서 도드라진 미모로 피어나는 모란과 난초, 채색의 세상에 꽂힌 눈부신
첩지(疊紙)가 되기보다
돌의 침묵으로, 향기로만 뜻을 전하는 꽃의 마음으로, 마음의 화첩 속에 숨은 그대를 노래
하련다
그대가 지닌 침묵의 크기를 보여 주련다
-『시와 소금』 201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