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과 신(神)과 성(誠)의 영역을 넘나들다
■ 문(文)과 신(神)과 성(誠)의 영역을 넘나들다 /강영은
-민용태 시집 <봄비는 나폴리에서 온다>(문학아카데미)를 읽고
민용태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봄비는 나폴리에서 온다>를 상재했다.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천년 이상 된 이웃”들에게“ 들려주는“수천 년 숨 쉬고 살아온 우리말의 말들끼리 하는 소리 녹음”이‘시인의 말'이며 “우리 주위에 숨 쉬고 있는, 혹은 숨죽이고 있는 이웃들의 말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시인의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교수이자 시인이며 방송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시인의 말이 “화순 이서의 천년된 은행나무"와 “스페인 Ciudad Real 시의 올리브나무”에 내리는 봄비처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 <백거이>가 "시란 정(情)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고 말했듯, 시인이 시집 속에는 사유라는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시의 나무를 성장케 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시적 발아체로서의 봄비는 의미하는바, 은유적 공간인 나폴리에서 왔겠지만 고대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항구 도시, 나폴리에서 오는 봄비는 지중해의 바람결을 타고 부단히 봄을 밀고 오는 중인지 모른다. 제목의 배경이 되는 나폴리는 예로부터‘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이며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최저 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교차가 적어 이탈리아의 도시 중에서도 기후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렇게 사철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고 보니 봄비가 나폴리의 무르익은 풍광을 살찌우게 하는 배후임에 틀림없겠지만 '모두가 살아 숨 쉬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시인의 나폴리, 그 은유적 공간은 어떤 곳일까,
시인의 나폴리를 향해 운을 떼려니 문득 두려움이 앞선다. 부족한 시안이 <세계문예사조의 이해>등 14권의 연구서와 <행복의 기술> 등 5권의 에세이집, <돈 끼호테>등 9권의 번역서를 내었고 6권의 시집을 내기까지 두루 성찰해온 시인의 시세계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풀어주는 부드러운 색, 올리브 그린 컬러의 산뜻한 시집을 받아들고 봄비처럼 젖어들기로 한다.
시인은 21세기의 문예사조를 진단하면서‘21세기 전망과 희망’라는 글의 끝부분에 “우주를 우주 되게 하는 것도 문(文)이고 실체였음을 동서양은 안다. 우주의 코스모스적 비전이 에로스 신(神)이다. 동양은 자연을 에로스로 보고 선(善)과 조화(調和)의 이상으로 본다. 그 조화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아니면 존재는 없다는 것이 중용의 성(誠)에 대한 생각이다.”라고 쓴 바 있다. 금번 상재해낸 시집 역시 이러한 문(文) 신(神)과 성(誠)의 영역에서 시적발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한편이 우주와 자연과의 교감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편의 문(文)이며 에로스적인 신(神)이 우주적으로 결합된 장소이고 시공의 벽을 넘어선 인간 존재의 근원지로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었다. 5부로 나누어진 시집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적 언표들은 인생, 사랑, 시, 신, 자연, 우주 등이다. 시인이 펼치는 유려한 세계 속으로 들어 가 본다
1, 시공의 벽을 넘는 誠
자살은 리필이 안된다/블랙 블랙 커피/담배 연기로는 번지 점프가 안된다-<자살 카페>-부분
인생은 /산부인과 의사가 장의사에게 보내는/소포 -<스페인식 유머>부분-
인생을 어떻게 통달하랴/나는 눈물이 많아서/인생의 영원한 아마추어-<아마추어>부분-
어머님이 죽고 동생이 죽고 미당 선생님이 죽고/ 나에게도 은하계를 달리한/나의 피붙이들이 있다/ 탁 치면 세상의 먼지, 혹은 피-<모기>부분-
돌아온 이 없다/ 돌아올 길 없다/ 나는 외길/ 외기러기 -<외 기러기>-
인용 시들은 1부에서 무작위로 뽑은 시편들이지만‘위풍당당 행진곡’처럼 한결같이, 시적 행보가 경쾌스러우면서도 시말이 나아가는 향방은 모던하고 시적 에스프리를 담뿍 지니고 있다. 인생이라는 심각한 명제마저 시인의 손끝에서 발랄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다. 물리적 나이에 비견해 이처럼 젊은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에 대해 느긋하게 포용하는 중용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은퇴 이후 명실 공히 본격적 시인으로 되 태어나는 시집이다" 라고 쓴 시인의 말이 없다면 그 발랄함의 주인공이 이순의 시인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세월과 자신을 균형있게 조율할 줄 아는 지혜를 지닌 자만이 물리적 나이를 초월하여 자유로운 사고를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공의 벽을 넘나들며 토해내는 시말들은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 세련미의 정수를 맛보게 한다. 행간마다 봄비와도 같은 상생의 기, 즉, 誠의 기운이 물씬 풍겨나온다.
誠이란, 원래 <논어(論語)>의 충(忠)·신(信)을 말하는 글자이다.<주역(周易)>에 나타난 성심(誠心)의 덕을 맹자(孟子) 이후부터 이 글자로 대표하게 되었는데, <중용>의 새로운 부분에는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다"라고 하여 그 숭고한 본래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지상에서 실현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다시 그것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일을 마음속에 있는 고귀한 본성인 성심으로 실천하는 것이 곧 誠이라 하였다. 誠은 <중용(中庸)>의 근본사상으로써 모든 덕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본래적인 덕인 것이다. 시인의 시편들은 늙고 젊음의 경계가 조화롭게 어울려 시적 아우라를 이루는 誠의 氣로써 읽는 내내 생동감을 발휘한다. 시 한편을 더 감상해 보자.
나에게 우주를 주고 배를 주지 않은 사람아, 우주를 주고 푸르름을 주고 배를 주지 않은 사람아, 개미와 함께 직장과 일상, 우레가 아니어도 심장이 내려앉던 상사와 상관의 고함소리,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 사이를 맴돌던 다람쥐 쳇바퀴도 65세 정년으로 쫓겨날 때는 바람 빠진 튜브처럼 나의 우주는 김빠지고,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하 많은 잎사귀와 입사 동기들, 들어가는 것이 나가는 것이고, 피는 것이 지는 것이고,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이라는 절의 종소리를 들으며 언덕에 오른다 해돋이는 안개에 묻히고 노을은 땅거미에 눌려 어둠 속에 서 있다 나에게 우주를 주고 배를 주지 않은 사람아, 나에게 우주를 주고 나를 주지 않은 사람아, 날은 저무는데 갈길 모르는 나그네, 해가 너무 짧구나.
-<우주와 나>전문-
누구나 우주라는 근원적 장소로 나아가려면 우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야 한다. 여기에서의‘배’는 도강을 위한 통과 의례의 수단이나 저력이 되는 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만 광활하면서도 미지의 공간인‘우주’자체가 상당히 함의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시 속에 나오는 ‘배’ 역시 다의성을 띈 오묘한 울림을 준다. 모태, 혹은 사랑하는 여성의 ‘배’까지 연상되어지는데 이와 같이 증폭되는 시인의 상상력은 시 공간을 뛰어넘는 스페인의 걸출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2, 살바도르 달리풍의 상상력
모든 것은 구더기 밥이라고? 오 세네카여
게리쿠퍼의 시체에는 이제 구더기의 방문도 그만 두
었다
그 게리쿠퍼가 이승과 저승을 절단하는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려 할 때, 잉그리드 버그만
눈물을 싸들고 " 여기 우리 이대로 잠깐만...."
입술에 입술을 머물게 했다.
더 이상 종소리는 없었다 , 총소리와
돌과 모래와 영화와 망각 속을
달아나는 세월의 말발굽 소리
그 흙먼지 속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랑하던 게리쿠퍼도 잉그리드 버그만도 그 영화도
그 사랑을 보고 울던 학생도
망각의 강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망각은 없다, 먼 하늘 맨 하늘에서 소나기가
온다
구더기는 또 피라미 밥, 피라미는 망각의 비늘
지친 세월의 낚시대 너머에 문득
깨달음보다 거센 폭포의 유혹.............
사랑은 한 순간의 꿈이라고?
모든 사랑은 꿈이다! 영화다! 현재다!
현재는 영원하다
절벽 같은 게리쿠퍼의 입, 폭탄 보다 고요하게 포효하
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새하얀 치아, 폭포는
무인칭으로
수 천 절규 절벽 절정에서 노을과 만나게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전문-
위 시의 오브제가 되는 인물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멋진 인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은 그러나 이미 작고하여 희미한 기억 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 영화를 보던 학생도 사랑에 목매달던 한 때도 모두 망각의 강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망각이란 시 속의 표현을 차입해보면 피라미를 낚는 미끼, 세월을 낚는 낚시 대에 걸린 구더기 밥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미래를 조망하는 시인의 상상력엔 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꿈꾸는 자아의 기억속의 탐험을 그림 속에 그려 넣은‘살바도르 달리’처럼 시인의 상상력은 망각 속에 파묻힌 기억마저 현재로 재현시킨다. 이처럼 사라지지 않는 상상의 힘은 에로스적인 신(神), 다시 말해 사랑을 우주로 확산시키는 원동력으로써 우주와 자아의 합일이라는 시의 목표를 충실히 수행해낸다. 이 코스모스적인 에로스는 성과 영혼, 몸과 마음, 감각적 취향과, 초월에 대한 관계성에 있어 보다 근원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자연을 통해 우주와 교감하는 근원적 존재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시 역시, 사랑이라는 화두 속에서 우주론적 존재성을 찾는 예시라 하겠다.
하루살이는 입이 없다고 너는 말한다. 하루를 사니까 입이 없어도 사랑한다고 너는 말한다. 입이 없어도 먹고 입이 없어도 말하고 입이 없어도 입 맞추고... 그 대신 하루살이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로 말하고 날개로 노래하고 날개로 입 맞추고 그리고 하늘로 배 채우는 하루살이 // 땅거미가 질 무렵 너와 내가 노을을 먹는 식당 유리창에는 수없이 많은 하루살이들이 붙어 있었다 쌍쌍이 모두 짝을 지어 꼼짝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쌍쌍이 자살하듯 옷을 벗고 있는 중, 더욱 정확히 말하면, 쌍쌍이 지상의 허물을 벗고 있었다// 쌍쌍이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쌍쌍이 옷을 벗는 것과는 다르다. 옷을 벗고 사랑을 한다는 것과 다르다 사랑은 한 순간의 꿈이라고 남들은 유행가처럼 말들 하지만, 하루살이들은 옷을 벗고 꿈을 벗고 하늘 속에 영원 같은 둘의 하나를 수 놓는다 영원 같은 하루를 산다 시를 쓴다//하루살이는 입이 없다고 너는 말한다 입이 없어도 먹고 입이 없어도 말하고 입이 없어도 입맞추고... 너와 나는 놀란 눈으로 유리창을 바라본다 유리창에는 두 얼굴이 하나 되어 비친다 유리창너머 먼 하늘이 시방 우리들의 꿈과 식탁을 지켜본다
-<하루살이)전문-
3, 시적 메타포의 시편들
제 3부는 시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사유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시적 메타포의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를 우주 되게 하는 것도 文이고 실체였음을 동서양은 안다.”라고 쓴 시인의 글에서 보듯 한 존재를 소우주라 지칭 했을 때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것 또한 文일 것이다. 文이란 사전에 의하면. '글월, 문장(文章), 어구, 글 ,글자 문서(文書) ,서적(書籍), 책, 문체(文體)의 한 가지, 채색(彩色), 빛깔, 무늬, 학문(學問)이나 예술(藝術) 외에도 법도(法道), 예의(禮義), 조리(條理), 현상(現狀), 산문(散文), 결, 나뭇결 그리고 꾸미다, 몸에 새기다, 빛나다, 화려하다(華麗--), 아름답다, 선미하다(鮮美--), 어지러워지다' 등으로 설명되어 있다. 한결같이, 존재의 외양을 이루거나 존재의 바탕이 되거나 기의를 발현하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시편들은 이러한 文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생과 사가 한 몸에 있으니
둘이 아니며
발과 구두가 한 발자국이니
둘이 아니며
삶과 시가 나에게 있으니
둘이 아니며
-<나와 나의 시>부분-
“문학이란 죽음뿐이다”라고 쓴 <미겔 데 우니무노>의 글을 부제로 사용한 위 시를 보면 시 작업에 임하는 시인의 시 정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드러나는지 스승의 죽비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시를 쓰는 내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매 작품마다 편편이 스며있는 치열성은 심각성보다는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시의 외형을 드러내기 때문인지 시인의 시적 에스프리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특유의 감각으로 시 쓰기의 屍臭를 뿜어내는 다음 시편에 눈이 머문다.
시는 어떻게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가
시체는 어떻게 사람 모습으로 누워 있는가
숨소리에서 떨어져 나간 코와 입, 머리칼, 새끼손가락
이것이 어떻게 나인가 너인가
내 동생이 자동차 사고, 혹은 성수대교 붕괴 쓰레기
혹은 컴퓨터 쏟아놓은 글씨, 시
쓰레기 더미에서 실낱 같이 들려오는 숨소리
발자국 소리
때로 너는 바퀴 벌레라든지 금줄이든지
구름이라든지 백지라든지 컴퓨터
혹은 졸음 오는 나의 눈동자라든지
밤 0시의 시 쓰기, 밤12시니 그만 자자고 소리치는
아내라든지
무명용사의 묘지는 늘 만원이다, 다만
지금 내 눈에 떠오르는 것은 Esther, Blanco,1972,4, 23
영어시험 시간 중 파르르 떨던 하얀 소녀 하나
이미 너에게도 나에게도 없는 그림이 그립다
시가 누구를 누구 숨소리를 붙잡아 둘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짓이 죽은 뒤 나로 남을 유일한 사랑
시와 구름은 또 다시 수 만장의 백지를 버린다
나의 상여 뒤에 뿌리고 갈 종이꽃 이파리 같은
-<시 쓰기, 시체놀이>-
"시가 누구를 누구 숨소리를 붙잡아 둘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짓이 죽은 뒤 나로 남을 유일한 사랑" 이기 때문에 시인은 밤늦도록 시를 쓴다. 숙명적인 사랑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 쓰기, 시체놀이>의 시취가 장미꽃 향기보다 달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죽음보다도 더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시취의 향내를 맡으며‘무덤과 별 사이가 너무 넓'은 시인의 아우라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 너무 쉬워서// 다음 시행이 나는 제일 어렵다”는 ‘어려운 시'를 만나 ‘돈카스, 먹어/다음은?/싸’기도 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좋은 시를 쓰려고 했는데 또 누더기가 되었다'는 자책에 공감하면서‘말이 끼리끼리 속삭이는 소리’와 ‘별이 끼리끼리 속삭이는 소리’까지 귀에 담는 시인의 우주를 천착해보거나 '별 볼일 없는 별'들에게 물어보면서 긴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을 만나기도 한다. 또한 '바퀴 벌레 옆에서 먹을 것도 안 나오는 시를 쓰는 사람', 즉, 시인의 자화상이‘시를 청탁한 박제천 시인에게 감사하며‘ ’황금찬 찬가‘를 부르는 모습과 시의 발톱이 무덤 넘어 까지 자라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소망을 보면서 시를 천착해내는 다양한 모습에 도취해 있는 동안 “시는 몸을 언어의 세계에 두고 언어를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하고 말한 <M.하이데거>의 시론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마지막 5부는 "시인의 에스프리" 라는 소제목 안에 스페인 ‘멕시코 시단’이 본 시인에 대한 기고 글이 들어 있다. 색다른 지중해 풍의 음식을 먹은 듯 황홀경을 맛본다. 그러나 그 맛을 일일이 늘어놓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것 같다. 그 부분은 이미 많은 분들이 언급하였기에 생략하려고 한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한 달음에 시집을 읽었음에도 보폭이 큰 그 시적 행보에 발맞추다 보니 어느덧 유리창에 어둠이 스며들어 있다.
'온 세상은 항구다, 아늑하다, 아득하다‘그래서 봄비는’발자국 소리도 가늘게 가슴으로/온다, 가슴으로 허리로 온다‘ 그렇게 와서 ’영원보다 어여쁜/부활의 눈빛, 4월‘ 은 모든 만물을 얼어붙은 땅 속에서 소생을 약속한다. 2009년을 맞는 벽두에서 '꽃 핀 여기 오늘' 지난 한 해의 슬픔이나 서러움 같은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문(文)과 신(神)과 성(誠)의 영역을 넘나드는 시의 봄비에 흠뻑 젖는 동안 올리브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아직 오지 않는 나의 4월이 소생하고 있음을 느낀다.
2009 미네르바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