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해설

식물적 상상력이 밀고 가는 법고창신의 우주

너머의 새 2015. 9. 10. 10:56

■ 식물적 상상력이 밀고 가는 법고창신의 우주 /강영은
- 주경림 시집 (풀꽃 우주)를 읽고-





'시란 간단히 말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다'라고 한 《M.아널드》의 말에서 보듯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에 있어서 시인들은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주경림 시인이 금번 상재한 시집 <풀꽃 우주> 는 시집 제목에서 보듯 식물적 상상력을 가장 효과적인 진술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목만이 아니라 시집 도처에서 보여지는 식물들은 시인의 사유를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인 역시 시적 대상인 식물들의 모습에 다양하게 조응하면서 <박제천> 시인이 쓴 해설에서 보듯 “자연과 시인의 습합을 통하여 자연은 인간이 되고, 인간은 자연이 되는 신화세계의 화엄경을”을 펼쳐나간다. 대개 남성성을 동물에 비유하고 여성성을 식물과 비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보면, 이처럼 식물적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는 근저에는 시인이 지향해나가는 시세계가 능동적인 과시가 아니라 수동적인 입장에서 타아를 완벽하게 끌어안음으로써 시인으로써, 모성으로서의 법고창신의 완벽한 우주를 개진해나간다 하겠다. 시인이 식물성으로 표상되는 상상력을 동원해 밀고 나가는 우주의 끝은 어디인지 조심스레 더듬어 보기로 한다.




1, 시인으로써의 우주




자연과 합일된 시적 자아가 재현해내는 세계는 너그럽고 풋풋할 뿐 만 아니라 풀꽃처럼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시적 아우라를 보여준다. 실제로 시인의 시집 속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등장하는데 표제시인 <풀꽃 우주>만 예로 들어도 익숙지 않은 풀꽃들의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하여 문명에 찌든 심신을 상쾌하게 어루만져 준다.




버드쟁이나물, 타래난, 산박하, 부채꽃, 층꽃나물…

하늘의 본성은 그런 모습일 게다

메마른 땅에 겨우 뿌리를 붙이고

발뒤꿈치 조심스럽게 들며 다복하게 일어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목숨을 이어

그 아픈 끝에 겨우 풀꽃 한 송이 다는,




바람이라도 불면 꽃잎은 흩어져버리고 말 걸

난을 칠 때는 세 번 꺾임을 주어야 한다는

‘삼전의 묘법’은 아랑곳없이

그저, 힘닿는 대로 쭉 뽑아낸 풀꽃 목숨




산국, 구절초, 쑥부쟁이, 참취, 고들빼기…

고개를 숙일 듯 말 듯하며

풀꽃들은 자기 목숨만큼의 우주를 열고 있다

더러는 바위 밑에 숨어서

혹은 개울가에 발목을 잘팍하게 담그고

그 또한 바로 내 모습이니,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를 그렇게

자꾸 바라보았다 마음이 잎사귀처럼 기울어

첫 서리가 내리면 시들어 버릴 풀꽃 우주에

허리 굽혀 입맞춤한다.




- <풀꽃 우주> 전문-







시골길에서 흔히 마주했음 직하지만 정작은 이름조차 몰랐던 풀꽃들을 나열하면서 시인은 목숨의 근간이 되는 하나의 우주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 우주를 여는 것은 "삼전 묘법"의 필치로 그려야 하는 사군자의 '난'처럼 까다로운 식물이 아니라 힘닿는 대로 쭉 뽑아낸 풀꽃들이다. 시인은 하찮은 풀꽃들에 자신의 모습을 이입시킨다. 풀잎이 남성성이라면, 끊어질 듯 가냘픈 목숨을 이어 그 끝에 꽃을 매다는 풀꽃은 시인이 생각하는 여성성의 상징이자 시인 자신의 모습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만나본 바에 의하면 시인의 모습 또한 풀꽃처럼 순하면서 여린 모습이다. 이처럼 가냘프지만 시인이 만들어내는 시적 아우라는 <풀꽃우주> 속의 이미지처럼 가냘픔 속에서 꽃대를 밀어 올려 우주를 여는 힘에 있다. 그 애틋함 끝에 우뚝 피어있는 시인의 우주는 자연과 습합한 고도의 향기를 뿜어낸다. 작고 하찮은것에 눈길을 주는 시인의 따뜻한 감성과 잘 어울리는식물적 상상력이 밀고가는 힘이라 생각해본다. 자연과의 교감이 두드러지는 시인의 다른 작품을 보기로 하자.




민들레 씨앗이 걸어간다

흙길 따라 울퉁불퉁 흰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꽃자루를 따라 내려가면

그물등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다

자기 몸집보다 큰 짐을 옮겨가는 중이다

뒷쪽 세 개의 다리 사이에

도톰한 민들레 씨앗이 꼭 끼여 있다

놓칠 뻔도 여러 차례,

느티밀구나무 잎사귀 한 장이 덮쳐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했다

짐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쓰러졌을 게다

비칠비칠 할 때마다

민들레 씨앗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삼각발로 균형을 잡는다

버겁게 느껴지던 내 등 위의 짐, 그 무게 때문에

내가 생의 한 복판을 잘 건너가고 있지 않은가

민들레 씨앗이 개미를 끌고 간다.

-<즐거운 노역>전문-




이 시편 속에서 나는 시인의 걸어가는 시작노고의 길을 본다. 개미가 민들레 씨앗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민들레 씨앗이 개미를 끌고 가는 역설적 발상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시적 발아가 한편의 시로 탄생하는 과정은 천로역정의 길처럼 험하고 고된 길이 아닐 수 없다. 인은 민들레나 개미같이 연약한 존재를 내세우면서 그 가냘픈 등 위에 시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야 하는 시인의 숙명에 대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생의 한 복판을 잘 건너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고무한다. 이러한 근성이 있었기에 가냘픈 등의 아슬아슬한 정점에서 꽃을 피워내는시인의 노고는 긍정적인 그 힘으로 인하여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인지 모른다. 그 하나의 흔적이 2008 <문학과창작 >작품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 때의 심사평을 빌려오면 다음과 같다.



“주경림 시인의 시세계는 자연과 시인의 습합을 통하여 자연은 인간이 되고, 인간은 자연이 되는 신화세계의 화엄경을 보여준다. 시인은 특히 진솔하면서도 담담한 시력으로 대상의 본질을 작품에 육화시키는 데 능숙하다. 시집 『눈잣나무』에서 보여주었던 식물적 상상력의 세계에서 진일보하여 자연과의 어우러짐에 망설임이 없다. 이번 수상작 「석양에게」외 1편 역시 대상에 대한 따듯한 애정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한낱 석물에 지나지 않은 양에게 생명을 부여할 뿐 아니라, 그 모성애에게까지 미치는 마음가짐은 시인된 자 누구나 본받을 만하다. 주경림 시인의 이 도저한 시력과 마음바탕이 앞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할 만큼 시인의 작품은 그 외연이 넓고, 깊이를 아울러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우주를 개척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시인이 시적 아우라의 근간의 되는 또 다른 우주로 떠나기로 한다.




2, 모성으로써의 우주



문득, 키가 큰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 한 알 떨어져

굴러간다 굴러간다

굴러가는 길이 내리막 비탈길이라

구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멈출 수가 없다




상수리나무는 우듬지에 손을 얹고

도토리가 굴러가는 길을 내다본다

도토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방향을 잡거나

속도를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제 몸 하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굴러가는 일은 이미 도토리의 제 몸을 떠나 있다




도토리가 과연 멈출 수 있을까

아니면 돌부리에라도 걸려 몸을 크게 다치지나 않을지

언덕 위에 상수리나무는 발뒤꿈치를 들고

도토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굴러가는 길을 멀리 내다본다.

-<섭리> 전문-




상수리나무가 어미의 제유라면, 도토리 열매는 자식의 제유에 해당됨직하다. 구태여 설명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 시편 속에서 지극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문 밖에 나갈 때마다 염려하는 어머니의 표상이 이 시 속에 선명하게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는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인다‘ 고 말한《E.A.포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시작품이 시인 자신이다’ 라는 말은 흔히 회자된다. 이 시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듯한 느낌을 준다. 모성애가 풍부한 시인의 모습이 시 속에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모성애를 섭리라고 부른다.

섭리의 어원을 찾아보면 구약성경《창세기》 22장 8∼14절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에 관한 내용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약속의 기업으로 얻은 이삭을 모리아산 꼭대기까지의 사흘 길을 가서 바치라는 야훼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야훼는 이삭 대신에 어린양을 준비해 두었다.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했는데 여기서 유래한 것이 바로 '섭리'라는 개념이다. 라틴어역에서 이 문구를 '데우스 프로비데트(Deus providet)'라 하여 섭리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v,i》)에 의하면 "만물의 위대한 창조주 하느님은 그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에 의해, 그리고 무오(無誤)한 예지와 자유롭고 불변한 하느님 자신의 뜻에 따라 가장 큰 것으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의 활동과 사물들을 유지 감독하고 처분 지배해서 그의 지혜와 권능, 정의와 선 및 은혜의 영화로움을 찬양하게 하신다"고 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신의 섭리를 모성애에 연결 시켰다. 모성으로써의 한 우주를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문학과 창작> 작품상을 수상한 다음 시를 보도록 하자.




세중世中돌박물관에서 석양의 무리를 만났다

그 중, 한 마리는

뱃속에 새끼 양이 들어 있어 불룩했다

꼬부라진 귀며, 눈과 코가 다 생기고

네 다리에도 힘이 붙어 보인다

꼭 어미를 닮았는데…




과연 출산 예정일은 언제일까

어미의 뱃속에서 어린 양이 잘 나오도록




석수장이의 손놀림을 흉내내어

돌 뱃속에 아기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

어미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어미의 등어리에 검버섯이 꺼멓게 돋아났다

출산 예정일이 지났어도 한참 지났다

주위에는 석호, 석마, 석사자 등이

앞발을 세우고 공격자세로 앉아 있다

오라, 험한 세상에

어린 것을 내보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석양石羊에게>-



박물관에서 만난 돌로 만들어진 양을 작품화시킨 이 시는 참으로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태란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고향과 같은 곳이다. 모태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의 욕구는 인간에게 있어서 부정적이거나 긍적적인 측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데 모태란 이처럼 그리움의 근원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공간인 것이다. 시인은 돌로 된 양의 모습에서 절대 불가침의 신성한 공간을 상상해낸다.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어루만지며, 감싸안고, 생명력을 위해 안간힘으로 싸우고 있는 모성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재현해낸 이 작품으로 수상의 영에까지 걸머쥐게 되었다. 뱃속의 어린 생명체가 어찌 될까 조마조마 마음 조아리는 어미의 심정을 그려낸 시적 아우라는 참으로 강력한 것이어서 식물적 상상력이 아닌 동물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지만 밀고 간 것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측면에서 하나의 동질감을 이룬다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찾아보는 또 하나의 묘미는 석양이라는 어감의 울림에 있다. 귀에 익숙한 석양의 의미는 해거름의 노을을 말한다. 만약에 돌로 된 양이라고 풀어 썼다면 울림의 효과는 줄었으리라 생각된다. 첫 구절의 ‘석양의 무리를 만났다’는 표현을 보면, 石羊이라는 의미로 귀에 닿기보다 노을이라는 의미로 더 빨리 접착이 된다. 단순히 돌로 된 양이라는 뜻이지만 중의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한 착각을 준다. 착각의 어감이지만 쾌감의 묘미를 준다. 시적 어휘나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서 시인의 이러한 각고가 화룡정점을 찍듯 한층 시를 완성시키는 역활이 되엇으리라.




3, 법고 창신의 우주



시 속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용사들은 시인에게 내재되어있는 지적 깊이가 얼마나 풍부한지 실로 현란할 지경이다. 시집해설을 인용하자면, “시인의 도저한 정신 탐구가 역사의식과 맞물리는 특징적인 시세계는 연암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떠올릴 만큼 전통의 현대적 수용과 변용을 맛깔지게 작품으로 구현” 한다고 되어 있다. 시인이 지닌 또 하나의 우주가 아닐까 한다.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92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를 상재했으며 언급된대로 2008, <문학과 창작>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적설의 공을 쌓은 결과는 법고 창신의 시세계를 재현시키는 농도 깊은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김해회현리패총 내부로 들어갔다/유리 전시실 너머로 9m 깊이의 조개무덤이/고스란히 드러났다/중략/나는 그날,/조개무덤 내부에서 시간의 얼굴을 만났다/껍질이 쌓여 알맹이가 된 시간의 눈금/껍질만 남은 나도 어느새/그 자리에서 하나의 그물코로 엮어졌다/내 맥박 소리 그대로 초침이 되어/조개껍질들이 째깍째깍 웃어대는/시간의 얼굴 위를 한바탕 뛰어놀았다./<조개껍질 시계>부분




경보화석박물관에 통나무 한 덩어리 누워 있다/ 규화목硅化木,/이름표에 쓰인 이름 따위는 알 바 없다/슬픈 게 무언지 모른다/ 아픔도 모른다 썩지도 않고 불에 타지도 않는다/ 모른다 않는다로 말할 수 없다/그렇다고 죽은 것은 더욱 아니다/ 오랜 세월 지나며/ 아는 것, 모르는 것이 다 부질없어졌다/ 생사를 잊었다 속을 비워내고 광물질로 채워졌다/ 나무가 돌로 변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돌이라고 부르기에는/ 껍질이며 나이테가 너무 선명하다/ 시간을 거슬러 전생으로 돌아가면/ 다시 새파란 잎을 피우며 일어설 수 있을까/이제,/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일도/ 돌로 굳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열반에 든 것이다/<열반에 들었다>전문




열반이란, 불교에서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말함이다. 시인의 시를 읽는 동안, 내내 옛것에서 차용한 시적 소재들을 다루는 시인의 경지가 최고에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다. 유려한 문체로 펼쳐나간 시편들은 원활한 소통력을 지니면서도 시편 마다 담고 있는 사유의 폭과 깊이는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와 현재 미래를 왕복하며 심미감 있는 감상의 묘미를 흠뻑 맛보게 해주었다. 시감상의 열반에 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기억을 오려 두셨나요?>, <악착보살처럼>, <나한상, 나한상>처럼 불교에 대한 종교적 깨우침을 깊은 사유로 풀어낸 시편들과 <흑요석 눈물법>, <잠복기>, <상처의집>같이 일상을 소재로 하여 쓴 시편들도 완성도면에서 조금도 뒤떨어짐이 없는 작품들이어서 마치 산해진미를 시식하듯 시집 한 권을 읽는 내내 행복하였지만 지면상 다 소개 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번만 읽기엔 너무 아까운 백미를 보여주었기에 곁에 두고두고 음이해 볼 작정이다.



식물적 상상력의 광활한 우주를 향유하다보니 내 몸에도 초록물이 함빡 들었다. 시인이 제공해준 쇠비듬, 곰취, 돌민들레, 산달래, 박태기, 왕벚나무, 감나무, 아이비, 토마토, 느릅나무, 울벚나무, 물푸레나무, 옥잠화, 상수리나무, 호박, 민들레, 느티나무, 쇠불꽃, 소나무, 버드쟁이나물, 타래난, 산박하, 부채꽃, 층꽃나물,산국, 구절초, 쑥부쟁이, 참취, 고들빼기, 난, 우죽, 노죽, 버드나무, 규화목, 개나리, 수양회화나무, 청실배 나무등을 호명하는 동안 봄빛이 성큼 무르익은 것 같다. 좋은 시집으로 잿빛 겨울 같은 답답한 현실을 봄볕처럼 어루만져준 시인에게 감사드리며 부족한 시안이 다 드려다 보지 못한 <풀꽃우주>는 좋은 평자의 손길로 더욱 향기를 발할 것임을 믿는다.



2009 문학과창작 봄호,



주경림 시인

서울출생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1992년『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 <풀꽃 우주>

2008년 <문학과창작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