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단평

비의 집/박제천

너머의 새 2015. 9. 10. 11:09

비의 집/박제천




아마, 거기가 눈잣나무 숲이었지
비가, 연한 녹색의 비가 내렸어
아니, 눈잣나무가 비에게 내려도 좋다는 거였어
그래, 눈잣나무 몸피를 부드럽게 씻겨주는 것 같았어
아마, 병든 아내의 등을밀던 내 손길도 그랬었지
힘을, 주어서도 안되고....
그저, 가벼이 껴안는 것 처럼 눈잣나무에 내리는 비
그리, 자늑자늑 젖어드는 평화
아마, 눈잣나무도 어디 아픈거야
문득, 지금은 곁에 없는 병든 아내가
혼자, 눈잣나무 되어 비를 맞는 것으로 보였어
그만, 나도 비에 젖으며 그렇게
그냥, 가벼이 떨리는 듯한 눈잣나무에 기대어 있었어



-시집'아,' 중에서




녹색의 悲歌/ 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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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소국이 수줍게 꽃망울을 내민 11월 어느날 갓 출간된 시집이 배달되었다. 박제천 선생님의 11번째 시집이다. 포장을 뜯으니 순결한 백색의 표지속에 아,(언뜻 보기엔 감탄사 같은)라는 시집 제목이 눈길을 끈다. 無의 산스크리스트어 발음이라고 한다.


-아,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11번째 새 시집을 마치고, 12번 째 새 시집의 첫 번째 시에서 나는 "혼자서 놀고, 혼자서 사랑하고, 혼자서 즐거워한다"고 썼다. 그런즉 이 시집은 그러기 전에 집을 찾아, 다시 집을 찾아, 길을 찾아, 혼자서 헤매고 다닌 작품들이다. 詩話를 곁들인 작품들이 많아서 해설은 생략하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 라고, 쓴 "시인의 말 "처럼


이 시집은 Aa(無), 我, (아무것도 안 가진 혹은 없는) 阿, (사랑하는 그녀가 없는 언덕)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렇게 다의적으로 느껴지는 아, 시인의 심적 근황을 이처럼 드러낸 한마디 단어가 어디 있을까 싶다. 시인의 아픈 초상을 엿보는 것 같아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

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혹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말하는 것이라고 국어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국어사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깃들이는 보금자리가 집임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건축물로서의 가시적인 의미보다 집이 지닌 상징성은 더욱 크다. 사람의 몸도 어떤 의미에서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집일수도 있다. 집으로 확대되거나 축약되는 생의 의미를 찾아 부단히 헤맨 시인은 그 결과 언어의 탄탄한 구조물로 형상된 이처럼 다양한 집을 지은 것인지 모른다. 실제 이 시집에는 온갖 집들이 등장한다. 1부와 2부에 걸쳐서 개인적인 체험에서부터 자연과 만물의 세계를 관통하여 우주적 공간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사유가 지어낸 집의 가짓수는 24채에 이른다.

이 시의 집, 다시 말하면 시집은 저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도 탄탄하게 다져진 사유에 바탕을 둔 인식의 시라는 점에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여러모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유의 넓이와 깊이가 집집마다 배어 있는 것 하며. 릴케가 2년여 동안의 정신적 육체적 공황 속에서 '두이노의 비가'를 쓴 것처럼 시인 역시 상처를 한 후 겪은 2년여 동안의 시간적 배경과 공간 속에서 극심했을 정신적 육체적 공황을 딛고 시집을 상재해낸 것이 무슨 악속과도 같이 공통점을 이룬다. 현실화 될 수 없는 그리움을 지닌 채 '지상에서 있었던 일'의 절대긍정의 과정을 여러 채의 집을 세움으로 증명하려 하였는지 모른다. 그가 뜬 눈으로 밤새우며 불렀을 '릴케의 천사' (꽃의 집)는 천사에 비견되는 사랑하는 여인인 아내이겠지만 그녀를 잃은 절절한 아픔과 폐허가 된 박토의 가슴에서 불꽃같은 시혼을 일으켜 세워진 시편들은 그렇기 때문에 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가 각각의 울림을 갖고 다가오지만 그 중에서 마음속에 자늑자늑 젖어드는 '비의 집'을 골라본다.

이 시에 나오는 눈잣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 소나무과(―科 Pinaceae)에 속하는 겉씨식물의 관목. 눈잣나무(Pinus pumila) 누워서 자란다는 뜻의 누운잣나무를 줄인 말로서 줄기가 곧추서지 못하고 옆으로 기면서 자라기 때문에 '눈잣나무'라고 한다. 바람이 불면 줄기가 옆으로 눕게 되어 땅과 맞붙게 되면 그곳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옆으로 기며 자랄 수 있다. 중국에서는 눈잣나무를 천리를 기면서 자란다는 뜻으로 '천리 송'(千里松)이라고 부르며 외국에서는 누워 자라고 키가 작기 때문에 '난쟁이소나무'(dwarf pine)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러한 눈잣나무를 보며 눈잣나무처럼 누워있는 아내와 그 아내를 어루만지는 화자의 환영, 떨리는 눈잣나무에 기대어 비를 맞고 있는 내면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이 그려져 있다. 시에 있어서 가감승제의 기법이 더 이상 필요없을 만치 완벽한 보석처럼 빚어진 서정시다.

눈잣나무 숲에 내리는 비는 속살거리며 내리는 보슬비이거나 알듯 모를 듯 촉촉히 적셔주는 안개비일지 모르지만 연한 녹색의 비를 발견한 시인의 눈이 놀랍다. 눈을 맑게 하고 마음에 평화를 주는 색감인 연한 녹색의 색감은 투명한 빗방울 속에 투영된 숲의 색깔이기도 하지만 화자의 그리움의 색깔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감정과 정서의 과잉으로 나타나기 쉬운 개인적 체험을 보드랍게 감싸 안는 역할을 한다. 병든 아내를 어루만지던 고통이 한 순간조차도 자늑자늑 젖어들던 평화의 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절대 긍정의 과정. 단순한 회억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화 될 수 없는 그리움에 대한 절대 긍정이 현실을 아름답게 수용하며 승화시킨 표현인 것이다. 캔버스의 부드러운 질감과 애틋하게 어루만지는 촉감과 독백체의 어감이 감각의 촉수가 되어 감정의 몰입이 아닌 , 감정의 절제와 깊이를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편에서 또 한편 눈길을 끄는 것은 쉼표로 끊어진 각 행의 첫 구절이다. 그 구절을 없애고 읽어도 무방하리만치 아름다운 시편이지만 각행의 첫 구절인, 아마, 비가, 아니, 그래, 아마, 힘을, 그저, 그리, 아마, 문득, 그저, 그만, 그냥, 은 심상을 강조하거나 감정을 주무르는 장치 적 역할을 하고 있다. 유추와 강조와 긍정과 부정, 전환과 강한 의지와 느슨한 여유에 이르기까지 노를 젓는 사공처럼 앞장서서 읽는 이의 눈과 입을 이끌어간다. 신선한 충격 속에 시의 파도를 타고 마지막 행에 도착할 즈음 마음 속에는 비가, 녹색의 悲歌, 자늑자늑 내리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