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로보로스/ 강영은
나는 검은 거울이다. 뒷면보다 앞면이 더 검은 거울이다. 검게 빛나는 내 얼굴엔 수많은 네가 피었다 진다. 어떤 너는 암벽에 발을 디디고 어떤 너는 암벽에 매달린다.
너와 나는 다정하지만 암벽에 붙들린 발목과 손목은 서로에게 불편하다. 손잡이를 놓친 네가 비명을 지른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데 나의 뒷면이 울음을 터트린다.
'여기는 동호대교입니다 문이 열리면 잊으신 물건 없이 내려주세요' 잊으신 물건처럼 너는 내린다. 나의 뒷면은 방향과 목적지를 혼동하지 않는다
상행선과 하행선이 방향을 바꾼다. 네가 사라진 어느 쪽이 천국이고 지옥인지, 여러 번 고장 난 나는 꼬리 문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생각은 나에게 뒷면을 보여준 적이 없다. 어둠을 삼키려는 슬픈 짐승처럼
나의 뒷면이 지상으로 올라선다. 덜컹거리는 심장 속으로 한강이 뛰어든다. 오리배가 뛰어든다. 자전거 탄 사람이, 코스모스 핀 강둑이, 흘러들어온다.
나의 뒷면이 수면을 버린다. 흑막으로 덮인 나의 내막이 맑아진다. 오늘도 많은 네가 내 속에 들어찬다. 앞만 보고 서 있는 너의 비밀을 나는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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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우로보로스라는 고대 이집트 신화 속에 등장하는 자신에 꼬리를 문 뱀의 형상을 시인은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궁금하다. 지식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닐 테고, 아마도 돌고 도는, 다시 제자리도 돌아오는 일상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창에 비친 자신에 모습을, 비친 모습이 아닌 검은 현상 속 유리(거울)를 자신으로 환치하면서 영원과 순환 전체성의 상징 위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그런 시로 읽힌다. 우로보로스의 강력한 상징성이 현대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요즘,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우로보로스는 마치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것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거울로서의 존재, 혹은 혼돈과 파괴, 변화와 순환에 서 있는, 앞만 보고 서 있는 나, 너의 비밀을 나는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는 시적 의지 또한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드러내고 있다.-<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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