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애의 존재, 존재의 귀환
– 우리는 헤어짐을 걷는다/ 최서진

개불알꽃 /강영은
우리집 개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 두 다리에 쏠려있다. 내 주위를 맴돌며 어떻게 한판 붙어볼까, 틈을 노리는 것인데 한 눈 파는 사이, 내 다리를 끼고 오르락내리락, 시소 탄다.
볼썽 사납다고, 야단하는 식구들 성화에도 잽싸게 다리 붙드는 솜씨는 두레 밥상을 감추는 밥상보처럼 한 경지를 이룬다.
졸지에 기둥서방 된 다리가 외면할 때면 귀를 축 늘어뜨리고 맥없이 눈망울을 굴리며 하염없이 앞만 쳐다보는 것인데
투명한 수정체에 실금 같은 것이 어리면 그 실금이 강물 같다는 생각에 사물의 각처럼 뾰족해진 마음도
세상의 모든 다리 아래 강물 흐르는 것 하며, 세상의 여자들이 다리를 지나 엄마가 된다는 생각의 묘수에 빠져 관용(寬容)에 다다르는 것이다.
사람도 가죽을 벗어 던지면 죽은 개처럼 땅에 묻힐 뿐인데, 맨몸의 땅이 꽃을 피우는 까닭이 무얼까,
시리고 아픈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꽃 피던 젊은 한때가 통증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인데
공격적인 모습 다 버리고 몸을 푼 새댁처럼 웅크려 있는 개를 보는 날에는
시베리아 벌판을 하염없이 걸어가다 바다로 사라진 죄수처럼 파도 위로 솟아오른 사할린섬, 외딴 산자락에 드물게 피는 개불알꽃 한 송이라고
폐결핵에 걸린 멸종(滅種)의 마음을 가만히 꽃병에 꽂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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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의 존재, 존재의 귀환 – 우리는 헤어짐을 걷는다/ 최서진
‘개불알꽃’은 시인의 섬세한 시선으로 개, 다리, 그리고 꽃이라는 감각적 이미지들을 엮어 존재의 외로움과 정체성, 성찰, 그리고 삶의 비애를 복합적으로 표현한다. 시의 겉모습은 한 마리 개를 통해 웃음을 자아내지만, 안으로는 상실감과 존재의 고통. 시간의 유한성까지 응축되어 있다. 특히 ‘개불알꽃’ 이라는 작고 희귀한 존재를 통해, 존재의 연약함과 삶의 뾰족한 슬픔을 한 송이 꽃처럼 펼쳐 놓았다. 개의 다리를 소재로 한 유쾌한 묘사는 곧 삶의 유한함과 존재의 연약함으로 전이되며 , “멸종의 마음을 꽃병에 꽂아본다”로 정점을 찍는다. 시인은 개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존재적 외로움을 반어적으로 표현하며, 일상의 웃음 속에서 인간 실존의 뼈대를 드러낸다. ‘개불알꽃’이라는 존재는 작고 희귀하지만, 그래서 더 강한 이미지로 독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것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감정들, 그러나 사라졌기에 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상징이다. 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할린 , 시베리아, 죄수 등의 지명과 존재는 이 시가 지닌 시적 깊이를 보여준다. “사할린 섬 외딴 산자락에 드물게 피는 개불알꽃”은 버려진 역사, 사라진 존재, 식민과 소외의 기억을 응축한 상징이다. 이러한 지명들은 시적 배경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개불알꽃’은 그 곁에 피는 생명의 마지막 징후이자, 기억의 화석처럼 가능한다. 시는 그렇게 우리의 감각을 조심스럽게 열어 젖힌다. 웃음이 가장 깊은 상실을 가리기 위한 덮개로 여겨진다. 결국 비애의 정서로 마무리되는 이 여정은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깊이와 연민의 눈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의 겉모습은 한 마리 개를 통해 웃음을 자아내지만, 안으로는 상실감과 존재의 고통. 시간의 유한성까지 응축되어 있다. 강영은의 시는 존재의 비루함, 연약함 , 사라짐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것은 윤리적 감각으로 승화시킨다. 웃음과 비애가 공존하고, 서소한 것이 가장 고귀한 것을 대체한다. 시인은 이를 통해 묻는다. 우리는 어떤 존재를 끝까지 감각할 수 있을까? 사라진 것들은 어떻게 시 속에서 피어날까? 존재를 기억하는 이 섬세하고도 깊은 시선이야말로 이 시가 지닌 가장 큰힘이다.
강영은은 유쾌한 일상속에 스며든 “멸종의 마음” 결국 사라진 존재와 연약한 정체성을 향한 깊은 통찰로 이루어진다. 특히 ‘개불알꽃’이라는 언어는 익살과 희귀성, 그리고 역사적 상흔(사할린, 시베리아, 죄수.등)을 동시에 품으며, ‘존재의 희귀성’이 결국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 시는 존재의 존엄을 꽃처럼 피워낸다.
최서진/ 2004년 <삼상>으로 등단, 문학박사, 시집으로 『아몬드는 아몬드 나무가 되고』 『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 『내 사랑은 눈물보다 먼저 녹는다』가 있다. 김광협문학상, 발견 문학상을 받았다.
『시와문화』 2025년 여름호 ◆'이계절의 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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