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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금숙의 시가 자라는 방 61]​

by 너머의 새 2025. 10. 18.

 

http://www.munha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260

 

강영은, 검시관 - ABC뉴스

[나금숙의 시가 자라는 방 61]검시관 강 영 은 차 유리창을 노크했을 때머리를 맞댄 두 죽음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텅 빈 입 속에서 뇌조가 흘러나왔다수천 미터의 상공으로 날아오른 뇌조는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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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숙의 시가 자라는 방 61]

검시관/ 강 영 은

 

차 유리창을 노크했을 때

머리를 맞댄 두 죽음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텅 빈 입 속에서 뇌조가 흘러나왔다

수천 미터의 상공으로 날아오른 뇌조는

날카로운 쇳소리로 울부짖었지만

구름을 뚫지 못한 지층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뇌조가 이 세상의 초록빛 말을 버리는 순간

허공이 무덤을 팠으므로 허공이 제 몸을 뒤집어

뇌조의 행방을 알려주기 전까지

죽음의 배후에 입이 있다는 것을

입이 입을 껴안는 방식은 귀에 있다는 것을

귀가 말의 무덤인 것을 알지 못한다

뇌조가 빠져나가지 못한 몸을 알코올로 적실 때마다

입에서 흘러나온 악취에 얼마나 자주 젖어야 했던가

입과 귀가 통하지 않는 세상과 만날 때마다

그 구멍을 솜으로 틀어막아야 했다

뇌조 속에서 돋아나온 기표들

세상에 뿌려놓은 입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도록

귀의 행방을 오래도록 더듬을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초록빛 귀에 대하여

사람들은 죽음 뒤편의 말을 골라 먹을 것이다

무덤 속에 든 입을 꺼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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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뇌조는 지상과 천상의 불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극지방의 고산 특히 설산에 사는 뇌조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가 어려워 이름은 있으나 실물이 아련한 신비감을 자아내는 새다.볼 기회가 희귀한 새가 두 사람의 정사(情死) 장면인 듯한 한 컷에서 솟아올랐다. 인연을 다하지 못한 연인들을 대신하여 항변하고 싶은지 뇌조는 죽음에서 발화하여 한순간의 불꽃으로 타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순간을 보는 시력이 아니면 이 뇌조를 보지 못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세상에다 자신을 열어 순간순간 발화하지만,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자극적인 언어들은 지상의 사람들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허공의 무덤에 파묻히고 만다.

‘모든 죽음의 배후에 입이 있다.’라는 말은 참으로 절실하다. 더구나 예기치 않은 죽음을 당한 이들은 들어줄 귀가 필요하다. 영정사진 앞에 서 보라.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이의 영정은 얼굴 전체가 입인 듯하고 우리는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고요히 그들에게 귀를 열어 주어야 한다.

입과 귀가 통하지 않은 세상이 절망스럽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시에서 입과 귀는 영원히 불화하는 주체들이다. 동시대를 사는 화자와 청자가 한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 역사의 유구한 비극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도 같은 일을 놓고 서로 다른 말을 내뱉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 와중에도 인연들이 번개처럼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 인연이 내는 고유한 소리가 분명히 있다. 죽음 뒤편의 이 말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무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초록빛 귀’는 들을 것이다. ‘뇌조 속에서 돋아나온 기표들’을 붙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초록빛 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이번 생에서 가능할지!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기억난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읽어도 지금의 우리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어 공명이 크다.

[나금숙]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나금숙 시인은 시집 『그 나무 아래로』와 『레일라 바래다주기』,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를 상재했고, <시산맥>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시와 문화> 편집위원과 <서울포엠> 수필반 강사를 맡고 있다. <시인하우스> 부주간, 현대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