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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시인4

샨티Shantih* 샨티Shantih*/강영은     주여, 이 문장에 평화를 주소서 바구니를 든 손은 가난하고 얼굴은 시들었으나 풍성한 열매를 따고 가는 가을의 얼굴처럼 기쁨에 들뜬 언어를 주소서 고단한 햇빛과 바람의 가시를 몸에 들였으나 폭풍우를 견뎌낸 심장은 튼튼하니 한 톨 한 톨 밤을 떨구는 우주를 받들게 하소서 매 순간, 헤어지는 땅의 시간을 감당했으니 홀로 서 있는 밤나무의 슬픔을 이해하게 하시고 먹을 것을 얻은 다람쥐처럼 그 밤의 깊이에 다다르게 하소서 빈 들녘에 울려 퍼지는 갈가마귀 소리가 노래의 도구(渡口)임을, 필생(筆生)의 울음이 필생의 노래임을, 루비콘 강을 건너는 입술에도 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물결을 저어가는 구음(口吟)이 내 과업임을 알게 하소서 나의 노동이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지날.. 2019. 4. 7.
오후 네 시를 지나는 두 개의 바늘 - 기억의 고집<살바도르 달리 오후 네 시를 지나는 두 개의 바늘 강영은 화단과 멀어진 ​다음, 그 다음에도 걷겠습니다. 활짝 핀 웃음을 기다리는 당신을 향해 ​걷다가 멈추겠습니다. 걷다가 멈추는 일이 습관이라면, 바람도 바람에 날리는 향기도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당신마저 .. 2018. 10. 5.
그물과 종달새​ 그물과 종달새/강영은​​그물에 걸린 종달새를 본 적 있니? 나는, 그 종달새와 그물 앞에 허공을 놓아 주겠다​바람과 햇살이 들락거리며 동아줄이 지닌 감옥을 비워내리라   내 입술은 그물을 찢은 칼처럼 흐느끼리라 ​종달새에게는 ​종달새의 자유를, ​나에게는 종달새의 하늘을 달라 ​종달새가 모든 노래를 풀어 놓으리라​종달새가 모든 노래를 풀어 놓으리라   ​ ​​『시인동네』 2016년 봄호, 2017. 1. 10.
양의 귀환 양의 귀환/강영은  대관령에 갔었네 ​천국의 어린양 같은 얼굴을 하고 하늘 아래 첫 동네, 대관령에 갔었네 양떼목장의 건초 더미는 알맞게 마르고 향긋한 냄새를 풍겼네하느님이 벗어놓은 초록 모자는 산등성이에서 빛나고​양떼구름은뒹굴기에 더 없이 부드러운 풀밭으로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몰고 오네발왕산 능선 위 울음 걸쳐 놓은 한 마리 양은 어디로 갔나이 평화로움에 온전히 물든 나에게 묻네길 잃은 양 한 마리(내 안의 양 한 마리)어디로 갔니?​2016년 평창시(시와 소금) 2017.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