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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107

‘관계’를 건너는 공간의 형식 ‘관계’를 건너는 공간의 형식 -강영은 시집 『너머의 새』⟨서평⟩​ 김성조(시인, 문학평론가) 1. 강영은 시인의 시에는 ‘관계’에 대한 사유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 ‘관계’는 사물과 사물, 나와 너, 우리들을 두루 아우른다. 나이면서 너이고, 당신이면서 그대들이 시적 대상이 된다. 우리는 날마다 관계 속을 걸어간다. 자연적 조건이든 인간 삶의 영역이든, 심지어 죽음까지도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각각의 독립적인 존재가 다른 존재와 관계함으로써 생명성의 기본 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세계의 관계성은 존재에 대한 인식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이는 크게는 우주적 질서의 범주이면서, .. 2025. 6. 14.
상상력으로 빚은 섬의 정체성 - 신화 그리고 전설 / 김효선 상상력으로 빚은 섬의 정체성 - 신화 그리고 전설 / 김효선 이집트 나일강 하류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농사를 가르쳐 준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시리스. 그에게는 아내 이시스가 있었는데 그의 누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우이면서 적대자였던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여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찾아 미라로 만들었으나 다시 세트가 빼앗아 여러 토막으로 잘라 땅 위에 뿌린다. 이시스는 다시 그 토막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맞추자 오시리스가 부활해 불사신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오시리스 신화다. 오시리스는 생명을 부여하여 땅을 기름지게 하는 나일강 그 자체이며 그의 아내 이시스는 씨를 받아들이는 이집트의 대지를 상징한다. 오시리스 신화는 이집트가 다른 지역의 침략을 받지.. 2025. 6. 14.
무한을 향해, 무한의 너머를 향해 / 이승희 『현대시』 2024년 7월호 《커버 스토리》 무한을 향해, 무한의 너머를 향해 / 이승희  1. 바람의 행보  강영은 시인과 드물게 통화를 한다. 상냥하고 밝은 톤의 목소리, 천천히 느리게 잘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을 항상 먼저 한다. 잘 있다는 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안부라고 할, 그러나 내게는 일상어가 아닌 시의 문장 같은 말들을 한차례 쏟아낸다. 마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제주의 안부를 섞은 바람이 불고, 이미 한 번의 바람이 지난 후의 남은 쓸쓸함 같은 게 빠르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외로웠구나, 또 시에 갇혀 살았구나, 그녀의 또 어떤 삶이 시를 불러 모으고 있구나, 그러다가 통화는 우리 언제 봐야 하는데 라는 말로 또 갑자기 마무리된다.  가끔, 그러니까 1년에.. 2024. 8. 17.
비자연화를 소멸시키는 태초의 언어/염선옥 비자연화를 소멸시키는 태초의 언어/염선옥 ​ 강영은의 시가 우리 삶에 울림을 주는 것은 그의 시적 상상력이 현실과 삶에 유의미한 충격과 감동을 끊임없이 선사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우리의 안과 밖에서, 존재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 원초적 언어로 교감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마술적 관여를 수행한다. 현대는 곱자의 세계다. 나무나 쇠를 가지고 90도 각도로 만든 ‘ㄱ’ 모양의 자(ruler)를 이용해 목수와 건축가들은 도시를 혈구(絜矩)한다. 시인은 비록 우리가 네모반듯한 측량의 세계에 살면서 자주 유용(有用)의 언어를 발음하지만, 그것으로 존재의 고독과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고 사유한다. 우주의 고향인 자연으로 회귀하는 ‘귀거래’를 택함으로써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침묵에 가까운 .. 2023. 11. 25.
본질로 뻗어나가는 가지 [현대시가 선장한 이달의 시인/ 작품론] 본질로 뻗어나가는 가지 /김진석 1. 누군가의 등을 보며 망설여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명치쯤에 뭉쳐있던 한 사람의 이름이 목을 타고 올라오다 턱에서 막혀버리는 듯한 느낌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단어가 입 안에서 난기류처럼 맴돌 듯 느껴지는 감각을. 부유하던 기의가 단단한 음절로 정제되는 순간, 가볍게 휘발되어 흩날리는 뒤편의 의도들에 대해서 말이다. ​ 고작 이름 하나를 부를 뿐인데 양 갈래로 갈라지는 마음을 앞에 두고 주춤거리다 호명이 숙명인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물에 어떤 비의(秘義)가, 하이데거식으로 존재가 스치는 찰나 이를 향해 손을 뻗어서, 마침내 형형한 빛을 내는 의도를 손아귀에 쥐었다고 확신하고는, 무형의 신비를 온전히 담아내고자.. 2023. 9. 20.
​[설왕설래] 독도의 날 ​[설왕설래] 독도의 날 - 세계일보 10 월 25 일 (월) “독도는 여간해선 깨어지지 않는 조선 막사발,/ 푸른 탁자 위에 엎어놓은 막걸리 사발이다/ 훔쳐갈 수 없는 이도다완이다.” 시인 강영은의 시 ‘독도’의 한 구절이다. 많은 시인들이 독도를 노래했다. 최근에는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출신 이소정이 영어로 독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부른 노래 ‘아일랜드’가 공개됐다. “동해에 우뚝 서 있는/ 내가 볼 때마다 항상 빛나는 너”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오늘이 독도의 날이다. 독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속하며, 동도와 서도라는 큰 섬과 크고 작은 89개 부속도서로 이뤄진다.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일방적으로 자국 영토에 편입했지만,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은 이렇다.. 2022. 3. 31.
김경미 시인의 문학이야기 ​ ​ 김경미 시인의 문학이야기 2021-11-23 현관문을 여는 두 개의 방식 -강영은 쇠 자물쇠와 도어 록, 여는 순서가 틀리면 잠겨버리는 두 개의 자물쇠가 있다 미로와 활로 사이 간절히 기다려 온 손이 있음에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해 있는 열쇠는 자물쇠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어떤 날은 숫자가 자물쇠를 내어주지 않는다 감성과 감각이 엇갈린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 첫사랑처럼 거리를 헤맨다 열쇠가 되기 위해 살아온 고집 때문일까 부르짖고 갈마된 마음이 노크할수록 열쇠가 되고 싶어진다 누군가 몸을 만지면 겁이 덜컥, 난다는 집의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문 안쪽이 궁금해질수록 열쇠를 어머니로 바꾸고 싶어진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얼마나 쉽게 현관문을 여는가, 잊히지 않는, 잊고 싶지 않은 열쇠 , 아무렇지 않.. 2022. 3. 31.
예술을 완성하는 관계의 화룡점정畵龍點睛/한기욱 ​ 예술을 완성하는 관계의 화룡점정畵龍點睛/한기욱 시인 윌리엄 스탠리 머윈은 “현대 시인은 허공을 극복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매고 다니는 인간”이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비어 있는 공간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고안된 언어의 사다리가 바로 ‘시’라니. 시를 쓰면 왜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독자는 시인이 만들어 낸 언어의 사다리를 스스로 용기 내어 올라가야만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때로는 “발을 딛는 단(시어)만 보지 말고 발을 딛는 단(시어)과 단(시어) 사이의 빈 공간 (표현되지 않은 의미)도 음미하면서” 천천히 올라야 하겠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때로는 단과 단 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멀어 독자는 발을 헛디디거나 구멍에 빠지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일 수.. 2021. 11. 5.
강재남의 포엠산책 (60) 산수국 통신/강영은 강재남의 포엠산책 (60) 산수국 통신/강영은 길고 좁다란 땅을 가진 옆집에서 길고 좁다란 닭 울음소리가 건너옵니다. 길고 좁다란 돌담이 젖습니다. 길고 좁다란 돌담을 꽃피우고 싶어졌습니다. 길고 좁다란 돌담 속에서 길고 좁다란 뱀을 꺼냈습니다. 길고 좁다란 목에게 길고 좁다란 뱀을 먹였습니다. 길고 좁다란 목을 가진 닭울음소리가 그쳤습니다. 비 오는 북쪽이 닭울음소리를 훔쳤겠지요. 길고 좁다란 형용사만 그대 곁에 남았겠지요. 비 개어 청보라 빛 산수국 한 그루 피었습니다. 그대에게 나는 산수국 피는 남쪽이고 싶었습니다. -------------------------------------------------------------------------------------------------------.. 2021. 9. 27.
제주 詩窓 I 큰부리까마귀 /강영은 2021 08 27 변종태(시인) / 1963 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다층》등단. 시집 『멕시코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 『니체와 함께 간 선술집에서』 『안티를 위하여』 『미친 닭을 위한 변명』『목련 봉오리로 쓰다』 현재 계간문예 《다층》 편집주간 2021. 9. 27.
시와 함께하는 세상 - 첫사랑처럼 이창하 시인의 시와 함께하는 세상 https://cp.news.search.daum.net/p/107229406 오래 남는 눈 - 강영은 뒤꼍이 없었다면,돌담을 뛰어넘는 사춘기가 없었으리라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쓸어안은 채 쪼그리고 앉아 우는 어린 내가 없었으리라 맵찬 종아리로 서성이는 그 소리를 붙들어 맬 뒷담이 없었으리라 어린 시누대, 싸락싸락 눈발 듣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눈꽃 피어내는 대나무처럼 푸르게 눈 뜨는 깊은 밤이 없었으리라 아마도 나는 그늘을 갖지 못 했으리라 한 남자의 뒤꼍이 되는 서늘하고 깊은 그늘까지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내 몸의 어둠을 미는 저녁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으리라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첫사랑처럼 오래 남는 눈을 알지 못했으리라 내 마음 속 뒤꼍은 더욱 알지 못했으리라 2021. 9. 27.
퍼소나의 심리학 , 퍼소나의 미학/강순(시인) 퍼소나의 심리학 , 퍼소나의 미학/강순(시인) 시가 누구의 어떤 목소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 옥타비오 파스 (Octavio Paz)가 『활과 리라 』에서, “시는 다수의 목소리이면서 소수의 목소리이고, 집단적이면서 개인적이고, 벌거벗고 치장하고 , 말하여지고 , 색칠되고 , 씌어져서, 천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편은 빔 -인간의 모든 작위의 헛된 위대함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 !-을 숨기고 있는 가면일 뿐이다”라고 한 말에 공감하게 된다. 시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적 화자, 즉 퍼소나 (persona)에 주목할 때, 우리는 이미 그가 연출하고 연기하는 무대와 언어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다. 시인의 가면(탈 )인 퍼소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며, 동시에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 2021.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