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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우리는 남과의 관계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이 그래도 건전한 이웃이며, 인격도 그리 나쁘지 않고, 흠이 있어도 남들도 대충 그럴 것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남이 자신의 과오나 단점을 거론하면 수용하기도 하지만 쉽게 분노하고 못내 억울해하면서 이런저런 거리를 내세워 변명하고 반격한다. 더욱이 그 폄훼가 오해에서 기인할 수 있다. 과도하거나 부당할 수 있으며, 시기의 소위일 수 있고, 무엇보다 이해에 따라 왜곡하거나 심지어 조작을 빌미로 한 중상이나 모략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메시지와 언성이 거칠어지고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며 그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다. 아니 의식해도 소용없다. 평소 우리는 이런 면모를 비루하게 여기며 경계하였다. 평소 우리는 자신은 그러지 않겠다는 자의식으로 은근히 자신을 자부하지 않았던가.
오늘 읽을 시는 우리의 그 면모에 관련된 성찰을 전개한다. 화자는 하늘의 축복으로 서설(瑞雪)이 휘날리는 듯한 어느 득의(得意)의 날에 자신을 겨냥한 남의 비난에 직면한다. 그 비난은 ‘눈으로 감싼 돌멩이’가 화자의 ‘등’을 타격하는 것과 같았다. 그냥 ‘돌멩이’가 아니다. 다시 말해 그 ‘눈으로 감싼’ ‘돌멩이’라서, 충격은 어느 때보다 고약하고 컸을 것이다.
함박눈 쏟아지는 날, 눈뭉치를 맞았다
딱딱한 돌멩이가 들어있었다
누가 던진 눈덩이일까, 상상이 먼저 등에 가 닿았지만
상상은 네거리를 지날 뿐 돌이 날아온 방향에 관심이 없다
빨간불 켜진 신호등 앞에서
켜졌다 꺼졌다 하는 상상 속에 여러 얼굴을 넣었다 뺀다
돌덩이에게 주먹을 내준 그가 누굴까?
얼굴은 사라지고 손만 남은 등, 내 등이 던져버린 손이 아닐까?
골리앗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힌 다윗의 돌은
육각형의 별빛으로 빛났다는데
별빛 모서리가 사라진 골목길에서 여러 번 나를
조각내거나 복구시킨 손을 만진다
앞만 보고 걷던 내가 내게 가장 먼 상처라는 걸,
가끔은 뒤돌아보아야 한다는 걸
등을 겨냥한 한 발의 총성처럼
숨죽인 내 손을 가만히 더듬어본다
- 「나는 내게 가장 먼 상처」/강영은
비난에 당면한 화자는 우리가 짐작했던 대로 그런 비난을 퍼트린 자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공격이 옳은지 그른지 ‘관심’ 없고, 대체 누구인지 알려고 한다. 사방에서 크고 작은 차가 소란하게 교차하는 ‘네거리’의 ‘빨간불 켜진 신호등 앞’에서처럼, 분노와 불안이 소리 없이 흐르는 마음의 와중에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모두 ‘돌덩이에게 주먹을 내준 그’가 아니라고 자각하고, 문득 ‘내 등이 던져버린 손이 아닐까?’고 의심한다. 화자는 자신의 ‘등’을 ‘얼굴은 사라지고 손만 남은 등’이었다고 수식한다. 여기서 부재하였다는 ‘얼굴’은 체면이나 이성의 환유일 것이고, 남아 있는 ‘손’은 예의 그 ‘주먹’의 ‘손’이며, 남을 공격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도구의 환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등’은 남이 보는 나의 어떤 모습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즉 이 비유의 시행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의 어떤 모습이 남에게 잘 노출되어 있고 남이 잘 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우리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거나 외면하려 한다는 성찰이 병렬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앞 ‘돌이 날아온 방향에 관심이 없다’란 진술에는 이미, 누가 비난을 했느냐보다는 그 비난이 옳은지 그른지를 생각해보아야 했었다는 반성이 함축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비유와 함축을 수긍하면서 화자의 자의식과 문제제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한편 우리의 모습도 잘 환기시켜 준다고 거듭 공감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메시지를 다룬 시를 어디선가 읽었고, 또 어떤 경서에서도 읽었겠는데, 싫증나지 않는다. 약간 그로테스크하기도 한 비유도 주목을 끄는 힘이 있고, 그 여운이 소진되기 전에, ‘별빛 모서리가 사라진 골목길에서 여러 번 나를/조각내거나 복구시킨 손을 만진다’란 진술이 이어지며 이 문맥은 우리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그저 주목하게 한다고 하기엔 그 인력이 세다. ‘별빛 모서리가 사라진 골목길’, 즉 ‘네거리’와 대조되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의 형상과, 내성(內省)이 용이한 공간이란 함축이 선명하고, ‘여러 번 나를/조각내거나 복구시킨 손을 만진다’라고 하여, 우리를 한참 생각하게 한다.
우선 여기 ‘손’은, 위와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도 물론 욕망과 의지의 도구지만, 자신의 과오나 단점을 역성드는 이기를 부수어 반성하게 하거나 그런 자신을 수습하며 겸허한 자기충실을 복원시키는 용도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췌언이지만 ‘손을 만진다’에서 현시된, 그 ‘손’을 운용하는 주체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미 위에서 알아본 대로, ‘돌이 날아온 방향에 관심이 없다’고 성찰하던 자아. 또 그러고 보니 이 성숙한 자아는 1연 ‘함박눈 쏟아지는 날, 눈뭉치를 맞았다/딱딱한 돌멩이가 들어있었다’는 진술의 주체였고, 4연의 반전성 각성이 빠르게 여겨져 좀 어색하였던 첫 인상을 수정하게도 된다.
7연에서 이상 사정과 의의가 분명해진다. ‘앞만 보고 걷던 내가 내게 가장 먼 상처’라고 탄식하는데, 우리는 이 시행을 반어로 간주하며, ‘앞만 보고 걷던 내가 내게 가장 가까운 상처’라고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화자는 그리하여 ‘가끔은 뒤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대로 넘어가기보다는 4연의 ‘얼굴은 사라지고 손만 남은 등’에 연관시켜, ‘가끔은 등에 얼굴이 있게 해야 한다’로 겹쳐 다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끝 8연, ‘등을 겨냥한 한 발의 총성처럼/숨죽인 내 손을 가만히 더듬어본다’는 전체 메시지를 격상하는 비상한 결구라고 하겠다. ‘숨죽인 내 손’이 ‘한 발의 총성’ 같다고 읽을 수 있고, ‘숨죽인 내 손을’ ‘한 발의 총성처럼’ ‘가만히 더듬어본다’고 읽을 수도 있다. 둘 다 형용모순의 긴장을 향유케 한다. 이 결연하고 수발한 자기서약을 오늘 우리의 정치 영역에서도 볼 수 있기를 우리 모두 부디 기원하자. 세파의 물정이 어떠하든 알든 모르든 하여간 그런 정치가가 너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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