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운 중력(重力) / 강영은
평생 걷다가 한 번쯤 만나는 그대가 극지(極地)라면 함박눈 쌓이는 하룻밤쯤은 극지로 가는 열차를 꿈꾸어도 좋겠네.
기차보다 먼저 도착하는 기적 소리에 실려 한 번도 닿지 않은 그대 마음속, 극지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네.
함박눈 맞으며 걷고 있는 나는 여기 있지만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지, 얼어붙은 빙하가 녹고 있는지
묵묵히 선 빙벽 아래 길을 내고 고요 속에 싹트는 한 송이 꽃을 기다릴 수 있으리.
지구상에 홀로 남은 동물처럼 가다가, 서다가, 돌아서서 울다가 얼어붙은 대지와 한통속이 된들 어떠리.
발자국만 남긴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미증유의 존재면 어떠리.
만남은 여기보다 조금 더 추운 곳에서 얼어붙고 헤어짐은 여기보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 닿고 싶어 하는데
마지막 남은 눈사람처럼 눈 감고 귀 닫고 오로지 침묵 속에서 그대에게 닿을 순간을 기다리네.
나 여기 포근한 함박눈 속에 누워 있으니, 그대 함박눈 속을 다녀가시라. 모든 길은 몸속에 있으니, 목적지(⽬的地)가 어디든 다녀가시라.
목숨이 오고 가는 길도 하나여서 녹아내리는 손바닥 위의 눈송이
나, 함박눈 같은 극지에 도착하네. 함박눈 쌓이는 하룻밤이 수목한계선에 꽃으로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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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함박눈”이 쌓이는 밤, 시인은 “그대”라는 닿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마음속 “극지”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극지는 단순히 추운 장소가 아니라, 사랑과 고독, 생과 사가 맞닿는 내면의 깊은 끝입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모든 것을 덮는 침묵이 되고, 때로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눈사람”, “동물”, “그림자” 같은 존재들은 눈발처럼 덧없이 스쳐 갑니다. 하지만 그 유한함 덕분에 그들은 오히려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아마도 시인이 말하는 “그리운 중력”이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끄는 마음의 무게일 것입니다. “모든 길은 몸속에” 있다는 구절처럼, 내면 깊은 곳의 그리움이 곧 길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르게 되는 지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내외일보(https://www.naewo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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