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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강나루 (시와 사람 부주간, 문학평론가)

by 너머의 새 2026. 3. 13.

※ 강영은 신작 소시집 | 작품론 |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

 

강나루 (시와 사람 부주간, 문학평론가)

 

지난 수년간 필자는 기억에 관한 여러 사유를 수필로 쓴 바 있다. 어린 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이지만, 성장하며 겪은 여러 경험과 기억이 어느 순간 과거의 나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감각은, 나라는 정체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자주 묻게 했다. 겹겹이 쌓인 기억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기억들이 언제나 정리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간 줄 알았던 시간들이 뜻밖의 순간에 현재를 건드리는 경험에 더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강영은 시인의 이번 신작 시들은, 경험과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강영은 시인의 이번 신작 시 다섯 편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벽 앞에 선 사람, 첫사랑의 기억, 사막에서 발견된 고래의 화석, 사랑을 끊겠다고 말하는 애연가, 그리고 빈집에 들어서는 화자. 겉으로 보자면 각기 다른 장면들이지만, 시들을 차례로 읽다 보면 이 이야기들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림자와 발자국, 빈집처럼 반복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시들 사이를 오가며, 저마다의 아픔을 느슨하게 이어 주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들은 시를 가로지르며 서로를 부르고, 그 결과 이 시편들은 하나의 단단한 주제라기보다, 천천히 형성되는 결속에 가깝게 읽힌다.이 이미지들은 모두 이미 지나간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 그림자가 생기고, 몸이 지나간 자리에 발자국이 남으며, 생명이 사라진 뒤 한참이 지나서야 화석이 된다. 사람이 떠난 뒤 집은 비게 된다. 그러나 강영은의 시에서 이러한 흔적들은 과거를 정리하거나 잊어버리기 위한 표식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사라진 뒤에도 쉽게 닫히지 않은 채, 현재의 시간을 건드리고 삶의 감각을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 시는 이 흔적들이 남긴 자리

에 오래 머문다.

 

「적면(覿面)」은 여러모로 고리타분한 문학적 대결 구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림자를 등에 진 벽(壁)을 본다.

벽면에 담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말 걸지 말아줘,

나는 지금, 눈앞에 놓인 장면과 씨름하는 중이야.

 

낮게 드리워진 햇살이 창날처럼

벽을 찌른다.

 

그림자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등줄기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벽을 두드릴 때까지.

 

철새 몇 마리,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끌고 간다.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처럼.

 

모든 배경에는 고통이 숨어 있다.

 

노을 지는 하늘 너머에

또 다른 하늘이 스며든다.

 

길어진 그림자가 벽을 비워낸다.

나는 그림자와 하나가 된다.

 

정면을 마주한다는 것은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그 벽과 맞서는 일이

삶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옥상 난간에 생각을 세웠던 날,

벽 너머를 보았다.

- 「적면(覿面)」 전문

 

시인은 고통을 마주한 장면을 숨기지 않는다. “낮게 드리워진 햇살”은 벽을 찌르듯 들어와, 고통을 가리지도, 부드럽게 덮어주지도 않는다. 화자에게 빛은 위로나 구원의 상징은커녕 눈앞의 장면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렇다고 그림자가 빛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도피의 공간인 것 또한 아니어서, 빛이 있었기에 생겨난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심지어 눈앞의 벽 역시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함께 서서 빛이 드러내는 외면할 수 없는 아픔을 버텨야 할 존재로 놓인다. 이 시에서 고통은 제거되거나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놓인 채 시간을 견뎌야 하는 무언가로 그려진다.

 

네가 쥐고 있는 건

돌멩이뿐이지만

 

네가 나를 겨냥했을 때

나는 이미 눈부신 빛을 지니고 있었다.

 

네가 돌을 던졌다는 걸

믿지 않았다.

 

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다만 눈이 부셨다.

 

첫사랑이여!

 

네 이름을 부르는 순간마다

얼마나 많은 기쁨이 그림자가 되었나.

 

네 그림자는 내 어깨까지 자라서

밤마다 별빛을 흔들었다.

 

나의 모든 것을 움켜쥔 너,

끝내 사라지지 않는 너.

 

나는 너의 시작이 아니었으나

너는 나의 모든 시작이었다.

 

너는 내 노래의 심장.

 

네가 남긴 눈부심 속에서

나의 한 생은 그림자를 이끌며 걸어간다.

- 「베가(Vega)」 전문

 

첫사랑은 “눈부신 빛”으로 시작되지만, 첫사랑이 끝날 무렵 남는 것은 “그림자”다. 이 그림자는 실패나 상처의 흔적이라기보다, 사랑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에 가까울뿐더러, 사랑은 선택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느 순간 몸에 배어 습관처럼 작동하는 것이기에 그림자는 점점 자라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자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자를 이끌며 걸어간다”는 인식처럼, 그림자는 이후의 삶을 따라붙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밀어내는 힘이 된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시간을 움직

인다.

 

4천만 년을 네 발로 땅을 걸었다는 고래 화석이 오쿠카헤(Ocucaje) 사막에서 발견되었다.

 

뜨거운 모래벌판을 지나던 커다란 몸뚱어리가 언제, 어떻게, 물속으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래의 발자국이 나를 모래밭으로 이끈다.

 

엄마와 함께 갔던 그 모래밭에는 네 발로 걷던 내 발자국이 들어 있고 해류에 휩쓸린 모래언덕엔 그날의 갯바위가 남아 있는데출렁이는 물살에 드러눕던 어머니, 하늘로 돌아간 발자국은 디딘 깊이가 다르다,

 

기원이 같은 죽음이 가만히 내 속으로 와 모래알을 굴리는 밤, 고개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에도 발자국을 묻어둔 사막이 있는 걸까?

 

터벅터벅 걸어가는 고래 발자국, 젖을 물리는 포유동물의 별자리가 눈동자 속으로 툭 굴러 떨어진다,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걸을 거야, 울타리 없는 사막, 내 마음의 폐허에 어미 고래의 숨이 가만히 발자국을 눌러 새긴다.

 

그리움은 어디서나 단단하게 굳은 족적을 남긴다.

- 「사막 고래」 전문

 

「사막 고래」에서는 흔적의 감각이 개인적 기억을 넘어 기원의 문제로 확장된다. 사막에서 발견된 고래 화석은 과학적 발견이지만, 시 안에서는 곧 화자의 기억과 연결된다. 네 발로 걷던 고래의 발자국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했던 모래밭으로 이어지고, 사막과 바다는 서로 대립하는 공간이 아니라 같은 흔적을 공유하는 장소로 겹쳐진다. 화자에게 어머니는 회상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어머니의 움직임은 존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가리키는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발자국의 ‘디딘 깊이’는 살아온 시간의 밀도를 드러내고, 사라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단단하게 굳은 족적”으로 남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흐릿해지는 감정이 아니라, 형태를 갖춘 흔적이다.

 

초겨울 저녁,

연초(煙草) 이파리 같은 별이 떴다.

 

애련(愛戀)아, 저 별 따다

폐 깊숙이 쌓인 독기를 걷어 가 줘,

두 손으로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던

네가 내게 와 닿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심장을 누르는 문장들은 지워 줘,

사약 같은 말에 길들지 않게.

 

담배밭 가장자리에서 나눴던

첫 키스, 그때를 기억해?

 

쓰린 입술에 낯선 향이 번지고

용기 대신

무모를 끌어안았던 네 마음 내 마음에도

오늘 같은 별이 떴지.

 

사랑인지 습관인지 구분 못 하던 밤들.

그때 그 입술로 돌아가 고백할 거야,

이제, 그만 만나자.

 

하지만 나는 알아

하늘의 재처럼 부스러질 나를,

 

초겨울 저녁,

폐로 드나들던 네 이름을 불러 본다.

 

네 이름이 왜 애련이었는지

오늘은 알 것 같다.

 

쉽게 잊히지 않는

네 이름을 입술에서 떼어낸다.

 

성냥불을 끈다.

채 익지 못해 떨어진 이삭처럼

연(煙)과 연(戀) 사이,

떨림이 먼저 사그라든다.

- 「어느 애연가(愛煙家)의 고백」 전문

 

「어느 애연가의 고백」은 사랑을 중독과 습관의 언어로 풀어낸다. “이제, 그만 만나자”는 등 사랑을 끊겠다는 선언은 금연 선언처럼 반복되지만, 번번이 미뤄진다. 더욱이 “사랑인지 습관인지” 구분하지 못했던 시간은 실패로 규정되지 않고, 오히려 뒤늦게 도착한 인식으로 다시 읽힌다. “사약 같은 말”처럼 사랑의 언어가 쉽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이어지는 “성냥불을 끈다”는 결단은 곧바로 “떨림이 먼저 사그라”들면서 힘을 잃고 만다. 화자에게 남는 것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 은근하게 끝자락에 머무는 미망이다. 사랑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화자에게 남은 것이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집은

당신 있는 집.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당신 없는 집, 빈집.

 

빈집에 들어선다.

아내라는 이름을 지우고

여자라는 외투도 벗어 던진다.

 

당신을 찾아 헤매는 바람 소리일까,

문풍지가 달달 떨린다.

 

창호지를 덧바른 문을 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나도 없는 빈집.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나를 비운 적 없다.

 

불 꺼진 방마다

먼저 눕는 것은 마음이다.

 

우편물도, 발소리도 닿지 못하는

마음은 먼 곳

,

그리움도, 문풍지에 머문 나도

멀어서 가지 못한다.

 

어디에 있을까,

당신 있는 집.

- 「미망(未忘)」 전문

 

화자는 “당신 있는 집”과 “당신 없는 집”의 대비를 통해 상실을 말 하는 듯 보이지만, 더 읽어보면 상실만을 말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는 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빈집에 들어선 화자는 아내라는 이름과 여자 라는 외투를 하나씩 벗어낸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씩 벗어던짐으 로써 소멸로 향하는 듯하다가, “나는 한 번도 나를 비운 적 없다”면서 부재한다고 여겼던 “당신”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인식의 전환에 가닿는다. 이 도달 불 가능한 상태는 급기야 “당신 있는 집”이라는 인식으로 지속됨으로써 빈집은 공허의 상징이 아니라, 여전히 향하고 있는 장소로 전환된다.

 

강영은 시인의 다섯 편의 시는 각기 다른 아픔을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아픔을 지우거나 극복하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면하고 회피하려 들지도 않는다. 화자에게는 고통과 사랑, 상실과 그리움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아픔을 감내한 채 시간을 건너고자 한다. 이 시편들에서 화자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화자가 겪은 사건 자체가 아 니라, 사건 이후에 남은 흔적이다. 그림자와 발자국과 빈집은 모두 사라진 것을 가리키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힘의 형식을 상징한다. 강영은 시인의 시 다섯 편은 바로 그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강나루 _ 《월간문학》 평론, 《시와사람》 시, 《아동문학세상》 동시, 《에세이스트》 수필 등 단. 시집 『감자가 눈을 뜰 때』, 동시집 『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 『해님도 아플 때가 있어요』, 에세이집 『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 평론집 『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