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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작시법 作詩法

by 너머의 새 2015. 9. 22.

작시법 作詩法/강영은



먹이를 찾아가는 수백만 마리의 누(gnu)* 떼가
대평원을 흔들며 달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드럼통 같은 몸뚱어리를 떠받치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함께 달린다
날카로운 이빨에 맞서는 것은
기우뚱거리는 발목의 힘뿐이지만
그 가느다란 끈이
서로의 발자국을 묶어주면서
건기를 지나
풀이 무성한 우기로 대평원을 운반한다
구르고 나뒹굴며 생의 행간을
지나는 길

누가,
누가 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긴 문장을 완성하는 누* 떼의 행렬 사이
누에게 길을 묻는
햇빛의 발자국이 간간이 섞인다

*아프리카의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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