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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해설

명품 만년필, 시의 상상력을 읽는 기쁨

by 너머의 새 2019. 1. 16.
명품 만년필, 시의 상상력을 읽는 기쁨

                     -지현아 신작시 특집 조명/ 강영은 

 

 

  시인은 ‘무엇을 쓸 것인가’ 와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두 개의 명제를 앞에 두고 고민하기 마련이다. 양날과 같은 이러한 고민은 세계와 그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상상 속에서 충돌과 화합을 거듭하여 시, 혹은 시인의 정체성과 동일선 상에서 함의된 결과물을 보여준다. 이번에 발표한 지현아의 신작 소 시집은 ‘무엇’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재현된 세계의 가치에 초점을 둔 시관이 자기 목적성으로 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몽블랑 만년필 시리즈와 같은 작가 시리즈를 보여주고 싶다는 시인의 말을 듣고 나니 고심 끝에 확연한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상상력의 발로로 여겨진다. 시인은 모티프가 되는 소설, 혹은 소설가에게 내면이나 현실세계를 부합시켜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해낸다. 이처럼 텍스트라는 기틀을 지닌 그림에 있어 발화가 이루어지는 지점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텍스트가 지닌 상징성이나 의미가 선험적인 의장이 되어 시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지현아의 시를 만나면 일순 당황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텍스트라는 근원을 캐내기 전에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무엇’, 다시 말해서 텍스트가 시인의 시선과 어떻게 부합되며 그 목적성이 드러내는 정체성의 양태를 읽어내고자 한다.

 

1,걸리버 여행기에 걸리버는 없다

 

  「걸리버 등반기」는 술잔과 산의 모습을 교합시켜 술에 취해가는 모습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술의 이름인 한라산을 중의적으로 시작하여 북한산, 삼각산, 지리산, 백두산, 소백산, 등이 지닌 중첩적 이미지를 통해 심리적 내면까지 생동감있게 그려나간다. 산이라는 대상보다 산이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펼쳐나간 상상력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양태를 쉼표를 통해 강조하거나 가파르게 호흡을 끓음으로써 더욱 긴박함을 보여준다. 읽는 이의 눈과 귀를 붙드는 이러한 장치는 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시인임을 증명해준다. 그런데 왜 '걸리버식의 등반기'일까, 걸리버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이 쓴 『걸리버 여행기』는 자유분방한 상상력 때문에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애독되고 있다. 소인국과 대인국 편이 다소 고쳐져서 아동물(兒童物)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통렬한 인간 매도(罵倒)의 풍자적 작품이다. 3권의 ‘하늘을 나는 섬나라’에서 걸리버는 맹목적인 사색(思索)을 하는 학자들을 비판하였고. 마지막 4권의 ‘말나라’에서 압권(壓卷)을 이룬다. 이성을 가지고 나라를 지배하는 존재가 말이며, 인간에 해당하는 야후(Yahoo)라는 동물은 매우 추악하고 비열하며 불결하고 뻔뻔스러운 종족으로 그려져 있다 .이성적 존재라고 하면서도 온갖 싸움질을 좋아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잔인한 도구도 만들어내는 인간에게 걸리버는 깊은 증오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걸리버의 모습은 작가인 스위프트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걸리버는 하나의 인격을 지닌 존재라기보다는 스위프트의 풍자 도구이다.

 

  빚쟁이가 찾아오는 현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가을밤이 좋아서 술을 마시는「걸리버 등반기」는 풍자의 가시로 능청스럽게 포장된 일종의 자아반성의 시다. 밤의 낭만과 술이라는 도피처로 탈출하려는 화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시각적 이미지와 무의식 속에 드러나는 어두운 가족사 (술주정하는 내용이기도 하다)가 시인의 감각적 상상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풍자의 가시는 어떤 시대가 되어도 예리함을 잃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다. 이 시는 삶의 비의를 예리하게 찌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혀가 자라는 나무 

 

   「피츠제럴드에게 고함」속에는 시적 메타포가 은근히 의장되어 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나무는 ‘혀끝으로 심어진 씨앗에서 자라는 다소 그로데스크한 이미지를 가진 나무다. 개인적 상징인 이 나무는 혀이면서 칼인 언어를 품고 사는 시인, 소설가여도 무방하다. 작품 속에는 이질적, 또는 서로 차이가 있는 요소들이 힘의 균형이 이루는데 언어적 이미지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의 비평가인 앨런 테이트가 서술에 있어서 <문자적 의미(extension)와 비유적 의미(intension)에서 접두사인 엑스(ex)와 인(in)을 떼어 버리고 남는 것(tension,> 즉, 긴장을 문학의 중요한 성질로 제시했는데 이 때 <긴장>이란 말은 문자적 의미는 바깥세계로 향하는 것이고 비유적 의미는 작품내부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밖과 안이라는 반대 방향에서 서로 당기는 힘이 긴장이고 보면, 강렬한 시어의 선택과 이미지의 화합에서 엿볼 수 있는 이 시의 바깥과 안은 각각, 모티프가 되는 피츠제랄드와 시적 화자와 지칭 한다.

  『위대한 개츠비』 (1925)로 유명한 피츠제랄드는 알코올중독과 병고로 불우한 말년을 보냈지만 그 시대의 어떤 다른 작가들보다도 시대를 잘 이해하였다. 스스로 설정한 작가로서의 엄격한 기준과 잡지 독자들이 원하는 기준 사이의 균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것처럼 서로 대치되는 요소들 사이의 긴장이 보다 나은 화합을 이룰 힘을 제공하기도 하는. 이 시는 때문에 시인의 자화상으로도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꼽자면/그건 사람의 혓바닥이라고/밤이면 혀는 더 많은 죄를 짓는데 밤사이/붉은 땅을 이빨로 땀으로 갈아엎고 물을 대는 동안/혀끝으로 떨어진 씨앗/알을 깨듯 나무가 솟아났다/ - 본문에서 보듯 '붉은 땅 위로 자라는/ 아기이면서 동시에 노인인 나무'야말로 시. 혹은 시인이 아닐까. 

  

3, 어느 단식광대가 나라면,

 

 

   「부탁해 카프카」는 카프카의 단편 소설 『어느 단식광대[ Ein Hungerkünstler ]』에 기저를 두고 있다. 1922년 "디 노이에 룬트샤우"에 수록한 이 소설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단식기술을 공연하는 예술가를 다루고 있다. 단식광대는 밤낮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관객들의 관심이 사라진 후, 마굿간 옆의 동물우리로 밀려나게 되지만 기력이 다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굶어 죽는다. 어느 누구도 그의 단신 일수를 기록하지 않지만 그는 죽기 직전에 그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한 게 단식이유라고 밝힌다.

 

  단식광대가 올바른 음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올바른 길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작품을 쓸 당시 아무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후두결핵을 앓았던 카프카는 아이러니 기법으로 자신의 예술가적 존재를 의문시하면서 근본적으로 자신의 예술가적 존재, 즉 작가로서의 자기 이해와 연관성을 드러내려고 했다고 한다. 단식기술은 예술의 축소 형식이다. 비생산적이고 반생활적이며 어떠한 인식에도 이르지 못하고 어떠한 공동체도 만들지 못하는 예술은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한다.

  단식기술이 시라는 언어예술의 정점이라 한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은 직관과 통찰을 통해 시라는 영역에 대해 '완전한 단식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가장 완벽한 이야기는 누구도 읽지 못한 책이라 생각’하는 시인의 사유는 젊지만 철학을 전공한 시인답게 여타 젊은이들과 차별화된다. "샘솟듯 뿜어 나오는 발랄한 상상력의 분출이 일품이지만 상상력 속에 자리 잡은 도저한 시선으로 우리 삶의 바닥을 훑어내고 있어 읽을수록 음미할 내용이 깊다"고 박제천 시인(문학 아카데미 대표)께서도 말한 바 있다. 시인의 에스프리가 두드러지는것을 바로 그러한 면에서다. 언어를 통해 완벽한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이란 존재도 어찌 보면 언어로 의장된 광대가 아닐까, 카프카가 그랬듯 시인 역시, 작가로서의 자기 이해와 연관성을 드러내는 시의 이면에는 시인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결의와 숙명이 들어있다.

  

 

4, 모파상의 유령신부는 도처에 존재한다.

 

 

 「모파상의 유령신부」는 모파상의 단편집을 초석으로 쓰여진 시이다. ‘무덤, 유령’ 등의 시말들은 모파상의 단편 제목과 유사하며 ‘사랑받고 사랑하다 여기에 잠들었노라’는 구절과 상황설정은 단편집 <박제된 손>에 나오는 ‘고인’ 이다. 모파상의 단편에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 어두운 염세주의적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무감동적인 문체를 통해 그의 작품 전체에 이상한 고독감을 감돌게 한다. 이런 경향은 당시의 시대적인 영향도 있으나, 그보다도 그의 신경질환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게 『여자의 일생』으로 널리 알려진 모파상은 장편 6, 단ㆍ중편 100여 편을 남긴 근대 자연주의 작가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지만 우울증, 여자에의 집착, 방랑벽 등으로 생의 대부분을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기도하고, 결국 43 번째 생일을 맞기 1개월 전에 죽었다.

 

  그래서인지, 모파상의 세계에서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는 것들은 귀신이나 흉측한 괴물, 악마, 뱀파이어 같은 것들이 아니다. 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익숙한 것들이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면서, 어느 것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모호한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 불분명의 모호함이 우리에게 참을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선물한다. 자신의 이성과 눈을 의심하게 되고, 혼란의 늪에 빠지게 되고, 빠져나오려고 버둥댈수록 더욱 깊은 곳으로 추락하게 되는 기이함을 연출 한다.

  이 시는 ‘죽은 약혼녀 같은’ 피해자인 입장에서 ‘시샘하고 괄시받다 쓸쓸하게 죽’인 세상을 향해 ‘묘비에 적힌 거짓말을 지우고/참말을 적어 넣던/그 여자라고’ 역설적으로 항변한다. 시인의 입은 진실을 향해 열려 있다. 고로, 거짓된 관계의 실상에 가감 없는 진실을 말하는 유령신부는 도처에 존재한다.

 

 

5, 행복한 오스카 와일드와 불행한 오스카 와일드 사이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말의 유미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극작가, 소설가, 시인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 · 동화 · 평론 등을 발표했다. 유미주의자로서 '미를 위한 미'를 주창하며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역설한 와일드의 유일한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은 『리핀코츠 먼슬리 매거진』 에 처음 연재된 후 부도덕하고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난에 대한 오스카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도덕적인 책이나 부도덕한 책은 없다. 잘 쓴 책, 혹은 잘 쓰지 못한 핵, 이 둘 중 하나다. 그뿐이다” 사실, 『행복한 왕자』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여러모로 대치되는 면이 있다. 신작 소시집의 마지막 시 「출간, 행복한 오스카 와일드」에도 선과 악, 긍정과 부정, 빛과 그림자 같은 양면성이 드러난다.  

'사파이어 눈과 사마귀, 엄마와 나’의 모습은 ‘행복한 왕자와 도리언 그레이’ 또는 ‘도리언 그레이와 그의 초상화’ 처럼 대착점을 이루면서 서로를 비추고 반추해낸다. ‘친구를 배신하고 살로메와 어울려 노’는 이중적인 삶을 신랄하게 반영하며 자아 성찰의 길로 나선다. ‘가려진 베일이란 없고 모든 게 선명한’ 삶과 ‘양장본처럼 반듯한 등을 가진’ 글을 낳고 싶은 또 한 사람의 오스카 와일드, 그 행간에는 늙고 추해져만 가는 한 여인, 엄마이자 내가 있다. 행복한 왕자처럼 소중한 것을 다 내 준 엄마처럼 시인은 정말이지 행복한 시집을 내고 싶은 건지 모른다.

  

 

6, 나가는 말

  

 

  몽블랑 만년필 시리즈처럼 작가시리즈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얘기를 곰곰 생각해본다. 종이 없는 디지털 세상에서 만년필은 진지한 필기구다. 컴퓨터 자판이 만년필을 대신하는 요즘, 그다지 사용치는 않지만 글 쓰는 사람에게 있어 목숨 같은 존재이다. 시인이 만년필을 앞세운 것은 명확한 의도에서다. 특히나 몽블랑 만년필 시리즈를 내세운 것은 몽블랑이 지닌 아트적인 요소와 만년필이 지닌 제유적 요소를 심도 있게 결합한 탓이다. 멀리서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 ‘하얀 여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몽블랑(Mont Blanc)’의 산봉우리들을 변형된 육각형 모양의 별로 형상화해 사용하면서 몽블랑은 단순한 만년필이 아니라 예술적 이미지를 지닌 상징물로서 정체성을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지현아의 신작 소시집은 제각각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명품 만년필인 셈이다. 저마다 특별한 의미와 한정판 수량을 지닌 만년필은 길항하는 삶의 외연과 내포를 두루 아우르는 시 혹은 시인이다. 기존의 텍스트가 세계를 모방하거나 재현한 것임을 생각해볼 때, 텍스트를 재해석하고 재생산해낸 이번 소시집은 시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2011년에 등단한 젊은 시인의 패기와 열정을 읽어내는 기쁨을 이쯤에서 갈무리하면서 아무쪼록 잉크가 마르지 않는 만년필이 되길 기원해본다. 

 

                         -2013 『문학과창작』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