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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番外에 대하여/ 정진규

by 너머의 새 2019. 6. 21.

다시 番外에 대하여

                            -律呂集 80

 

                                  정진규

 

문득 돌아보니 눈길이 가 닿지 않았던 것들이 홑앗이들이 널려있다 같은으아리 꽃 같은 것도 홑앗이로 피고 있는 으아리꽃들이 많다 내팽겨쳐져 저물고 있다 차마 쳐다보기 힘들다 番外다 나의 공책엔 等外라거나 列外라는 말이 적힌 대목이 있다 그런 것들보다 番外는 그래도 덜 외로운 편이다 다행이다 순서에는 들지 못해도 혼자서 아득히 뒤따라가고 있다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가? 속이 더 아리게 외로운가? 나도 番外는 된다 더러 순서 쪽에 가담된 적이 한두 번은 있었다 오늘은 홑앗이로 피고 있는 도라지 꽃을 보았다 혼자된 그가 수건을 쓰고 텃밭에 엎드린 허리의 맨살이여, 番外로 살다보면 아득히 아름다울 때가 있다 가을 하늘 저녁에 혼자서 아득히 날고 있는 기러기 한 마리를 볼 때가 있다

 

 

「시와 사람 」2012년 가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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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외, 그 쓸쓸함에 대하여/강영은

 

 

 

 律과 呂를 변주해내는 시인의 악기는 언어이지만 언어 속에 드러나는 풍류는 만물 속에 깃든 우주의 음악이며 리듬일 것이다. 이는 연속성과 불가역성을 본질로 하는 공간과 시간의 교합이며 육탈과 육화를 거듭해온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성의 본질을 재확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하겠다. 만물의 상호연속선 속에서 운동하고 하나의 끈으로 대우주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 律呂의 요체이고 보면 이 시에서 율려는 쓸쓸하고 애틋한 呂의 풍정, 축축한 응달을 지닌다.

 

 홑앗이가 된 자연의 사물은 분열과 파편화로 얼룩진 존재에 다름 아니다. 홑앗이의 뜻이 살림살이를 혼자서 맡아 꾸려 나가는 처지 또는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시속에서는 눈길이 가 닿지 않았던 것, 내팽겨쳐져 저물고 있는 것, 순서에는 들지 못해도 혼자서 아득히 뒤따라가고 있는 것, 아득히 아름다운 것으로 풀이 되고 있다. 홑앗이가 된 생은 차마 쳐다보기 힘든 番外인 것이다.

 

 최근 들어 왕따와 은둔 형 외톨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무리에서 소외당하거나 스스로 무리에 끼는 것을 포기한 자들을 말함인데 이들이 야기하는 사회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빈번하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묻지 마’같은 형태의 범죄는 대개 열외 이거나 등외에서 비롯되어진 소외와 좌절감이 기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예외 없이 서열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반열에 끼지 못 한 列外가 等外의 본질은 약육강식으로 대표되는 동물적 삶의 양태일 것이다.

 

 넝쿨식물이 나무를 타로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돋아날 자리가 없는데도 돋아나는 새싹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 해도  서로에게 길을 내줄 뿐만 아니라 어울려 공생하는 것이 식물의 본성이다. 식물은 상대를 열외거나 등외로 두는 적이 없다,  도라지꽃으로 비유되는 우리네 어머니의 지난한 삶이 얼마나 아득한 아름다움인지, 사유의 깊이와 관찰의 섬세함, 이 시를 통해 番外가 식물성임을 흥감해 본다, 가을 하늘 저녁에 혼자서 아득히 날고 잇는 기러기처럼 시인의 삶은 또 얼마나 아득한 쓸쓸함인지 반성과 성찰이 형용하게 빛나는 번외의 삶을 응시해본다.

 

 번외가 이처럼 특별하게 들린 적 없다. 정해진 등급 안에 들지 못한 等外거나 어떤 몫이나 축에 들지 못한 列外와 달리 어떤 사상이나 편견에 걸림이 없이 원융무애(圓融無楝)의 격조를 보여주는 이 시를 읽는 동안 외로움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진정한 외로움은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 의연함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본다, 그  고고한 기상이야말로 시인이 걸어가야 할 외롭고도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마침 가을이다 그대, 시인이여 가을 하늘 저녁에 혼자서 아득히 날고 있는 상상력 속에서 부디 외로움을 잃지 말았으면,,,, 아마 나는 이후로 오래 동안 番外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