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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이성과 감정의 시적 기능에 관한 앙상블/이종섶(시인)

by 너머의 새 2020. 1. 16.

■ 이성과 감정의 시적 기능에 관한 앙상블/이종섶(시인)

             김지명 시집 쇼펜하우어 필경사(천년의 시작, 2015)

             강영은 시집 마고의 항아리(현대시학, 2015)

 

 

두 권의 시집을 함께 다룬다는 것은 한 권보다 많은 두 권의 시집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한 권이 아닌 두 권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서로 맞물려 일으키는 빛깔의 조화와 대조를 통해 각 시집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일종의 기획적 의도일 것이다. 나아가 두 시집이 어우러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파장을 통해 한 권 자체만으로는 밝힐 수 없었던 그 무엇을 파악하고 규명하는 작업의 소득을 얻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도 곁들여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 권의 시집을 다루는 이상, 각 시집을 차례로 거론하는 나열의 방식이 아닌, 끊임없이 다른 시집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각 시집을 살펴보는 상대적 해석과 해설이 필요하고 그것이 더욱 값진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명의 쇼펜하우어 필경사와 강영은의 마고의 항아리는 적절하게 잘 어울리는 시집이다. 이 두 권의 시집을 살펴보면서 각각의 성향을 규명하고, 서로에 대한 관계와 존재의 증명에서 나오는 특징이 어떠한지를 생각해보자.

 

1.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김지명의 시 작업

 

시 쓰기에서 이성이나 감정 어느 한 쪽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론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이성을 통한 감정의 유입이나 작용을 막을 수 없고, 감정 또한 이성의 바탕 없이는 그 색채와 농도를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특성에 따라 이성이나 감정 어느 한 쪽의 작용이 두드러지거나 소극적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떠나서 한쪽의 지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성이나 감정 둘 중에 하나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지명 시인의 쇼펜하우어 필경사는 시 읽기 측면에서 경우에 따라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그 내용이 모호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것은 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독법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수학에서 감성을 느끼려고 하거나 음악에서 이성을 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출발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얻기 힘들다. 시 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텍스트로서의 시가 가지고 있는 원형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데, 시 읽기에서 텍스트보다 자기 기준이나 고정관념 또는 성향으로만 읽으려고 하니 도무지 의미 파악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이성과 감정의 차원으로 말하면, 이성의 시는 이성으로 접근하고 감정의 시는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다. 그런데도 이성의 시를 감정으로 접근하고 감정의 시를 이성으로 접근하는 등의 잘못된 주관적 방식으로 인해, 시 읽기의 어려움을 느끼거나 시의 맛을 보지 못하는 비시적 태도를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안개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 한다

배수진을 친 곳에 젊음은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별이 흩어져 있다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함부로 과녁을 팔지 않는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

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 댄다

절벽 한쪽이 절개되고

창자 같은 도랑이 넓어진다

사마귀 날개가 짙어진다

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 간다

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

밤마다 낮은 거래되고

밤이 낮의 초목을 흥정하는 동안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김지명, 쇼펜하우어 필경사전문

 

김지명의 쇼펜하우어 필경사는 이성적 시 쓰기와 더불어 이성적 시 읽기가 필요한 경우다.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거나 숨기면서 이성적인 서술을 통해 시적 형상화를 시도하는 시 쓰기 방식이야말로 이 시가 가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읽을 때 역시 감정의 느낌을 앞세우기보다 이성의 이해를 먼저 앞세워 시를 읽어야 하고, 그런 진행을 시가 끝날 때까지 한 행 한 행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 시가 온전히 파악될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이 시가 견지하고 있는 감정의 고원에 도달하게 된다.

예컨대 안개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 한다라는 처음 두 행은 문장에도 이성이라는 단어가 나오거니와 그 문장의 서술 자체가 이성적이다. 그 문장의 실상은 내가 안개 속에 들어간다일 텐데 그 시상은 안개가 나를 점령한다이다. 전자의 문장은 이성적 이해를 필요로 하기보다 읽는 즉시 감정의 작용을 동반하게 한다. 안개 속에 들어간 나의 감정이 즉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문장은 이성의 이해가 필연적으로 전제되고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성의 이해를 통한 감정의 유입을 꽤하는 문장에서 그 이성의 이해를 시도하지 않아 감정의 유입을 결코 이룰 수 없고, 그 결과 시가 어렵다는 섣부른 판단을 발설하는 무지를 드러내게 된다.

안개가 나를 점령한다라는 말은 내가 안개 속에서 있는 상태나 느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점령당한 상태나 느낌을 묘사하거나 그런 상황으로 진전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것이 역발상에 근거해서 의미를 직조하는 이성적 시도다. 그리하여 내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나는 전혀 그런 의도나 의지가 없었는데 오로지 안개가 나를 덮쳐온 것으로 설정해서, 이성이 상징하고 포괄하는 개인의 영역 그 이상의 사회와 시대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감정이 철저하게 피동적이고 자아 중심적이라면 이성은 능동적이면서 타자 중심적이다. 그러기에 그 반응의 자세가 가능한 이성을 다하는 것이고 그 이성을 통해 착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안개낀 풍경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히려 그것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자신이 바라보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 모두가 그 안개낀 풍경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풍경점령당한 현실을 알고 있고, 어쩌면 이미 점령당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이성적 시 작법의 흐름을 순발력 있게 따라가면서 이성의 기능을 통해 시를 읽게 될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성으로만 체득이 가능하고 이성으로만 공감이 가능한 이성적 시 세계일 것이다. 이성으로 보는 시 세계, 이성의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 감정의 시 세계. 그것을 밀도 있는 솜씨와 긴장감 있는 터치로 묘사하는 것은 이성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대상의 순간이나 내면을 역으로 비틀어 채색했을 때 가능하다. 시 한 편을 통해, 나아가 시집 전체를 통해 이런 이성적 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심히 즐거운 이성의 놀이를 구현했다고 하겠다.

김지명이 가능한 이성을 다해보여주는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김지명이 추구하는 시적 자아는 사람에게 눈멀어 마을 밖에 산다”.(은목서) 그곳은 토막잠이 표정을 결제하는 곳”(서정적인 잠)으로, 그곳에서 한 사람이 가고 줄줄이 다른 사람이 와도 식어버린 표정”(가능한 모르모트)을 보이거나 젖지 않을 우산 같은 표정들”(자물쇠 악보)을 짓는다. “반감과 정감 사이/애매와 모호가 나를 길렀다”(코스프레)고 할 만큼 누군가의 감정을 붙였다 오렸다”(발발이 추억) 하는 감정의 토사물이 쏟아지”(장마 통신)는 것을 경험한다. “빨강 파랑 감정의 색실이 낡을 때까지”(아나토미) “당신을 꺼내 사용할 첫 사람이 될”(유유상회)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반문한다.

그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걸까”(사막 정원)를 물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지만, “새의 발은 구름계단을 오르는 즐거운 높이/가을은 숲길을 지우는 기다란 붓질”(우월한 사진사)임을 발견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러다 세월은 분진으로 날아올라 욕망에 으름장 놓을 것”(싱크홀)임을 깨닫기도 한다.

그런 각성의 나날에 벌어지는 현상들은 애초부터 텅 비어 통 큰 바오밥나무의 철학이 살고”(지브러너) 있는 자리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양심과 선심은 주머니 속 먼지보다 적었”(뿔이 지나간다), “해진 신념의 길들이 흘러나”(아나토미)왔으며, “밤은 머리 위에 물주머니를 쏟아 생각하는 문장을 지워버렸다”.(은목서) 그래서 누군가의 통 큰 신념을 베”(뿔이 지나간다)낄 수밖에 없었고 등 뒤로 부서진 당신의 말을/내 작은 깃털로 번역한 사전”(공유)에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붕을 포획한 구름이/떼거지로 몰려와 광장을 향해 짖어”(요일)대는 시절에도 너무 많은 꽃들을 스쳐왔다/들녘이거나 골짜기 어디쯤에서 만난/꽃들의 행방은 모르는 걸로 한다”(나비 공화국), “표정을 지운 표본실에 눕는”(나비 공화국)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그녀가 사는 공화국은 이성적 서술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 이성적 공간에서 펼쳐진 감정의 출몰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다루거나 감정을 드러내게 했던 사건의 실마리나 개요를 묘사하면서 지나갈 뿐이었다. 감정의 실체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 묘사의 행간을 읽는 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 행간에 오래 머무는 자만이 이성의 공간에서만 빛을 발하는 감정의 미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근처 어디에도 내가 없어

들판에서 혼자 그려 낸 만큼 피우고 섰다

그의 눈에 띄기 위해 그를 눈에 담기 위해

먼 길 통증도 분홍의 의지로 편입시켰다

 

나는 손이 시려도 잡을 수 없는 연인일지 모른다

나는 재미없는 정물이라고 풍장됐을지 모른다

 

익명으로 털올 바람이 배달되고

자살하지 않을 만큼 슬픔이 배달되고

나는 내 얼굴을 몰라

몸속 깊이 함의한 그가 좋아한 색깔도 몰라

의심의 꽃대궁으로 그를 기다린다

 

말문 트는 입술을 훔쳐 건너온

오해의 여분만큼 그를 이해할 시간

 

꽃잎마다 그를 앓는 편지를 쓴다

어딘지 좀 채도가 부족한 생각일까

가끔 거부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갖고 싶은 사람을 소유한 사람의 여유랄까

그가 잠시 빌려 온 남의 애인이었으면 좋겠다

나침판 없는 시계를 찼으면 좋겠다

내 희망이 바삭 구워지기 전에

 

매음굴이라는 말로

공작소라는 말로

누군가 내 목을 따 갔다

그건 내 아름다움을 진술한 방식

어느 꽃씨 부족을 발성하는

그가 사는 거울

김지명, 꽃의 사서함전문

 

김지명의 시적 자아가 존재적으로 발설하는 사서함에 남겨진 기록의 대략이다. 다른 사물이나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에서 감정을 발산시키는 꽃을 두고 발성하는 존재론적 삶의 진위와 소멸에 대한 이야기. 거울은 감정의 공간이 아니다. 오로지 이성의 공간일 뿐이다. 감정으로 반응하는 자와 대면할지라도 그 감정을 이성의 공간에서 이성의 색채로 치환하여 그 감정을 분출한 자에게 다시 반사시켜주는 이성적 장치일 뿐이라는.

 

2.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강영은의 시 작업

 

김지명이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시 작업을 펼친다면 강영은은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시 작업을 펼쳐나간다고 하겠다. 감정은 시에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감안할 때 그 감정의 방향과 농도 정도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의 질적 수준이 결정된다. 이성적 글쓰기가 어렵다는 문제를 야기한다면 감정적 글쓰기는 쉽고도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글의 질이나 수준을 산출한다. 공감과 몰입, 깊이와 넓이 같은 것들이 감정의 공감각 확장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적 글쓰기도 동일한 형태를 가지기도 하나, 이성적 글쓰기의 결과에 따라 나타나는 표현은 이해나 깨달음과 같은 어휘들을 동반하는 지적 세계의 확장이다. 거기서도 감정이 수반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어디까지나 주류가 이성적 세계의 발휘와 관람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시 쓰기와 시 읽기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감정의 포착과 감정의 드러냄과 감정의 받아들임을 기본으로 할 때, 감정의 정서적 울림과 소통 그리고 감정의 채색과 농도의 정도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다. 감정의 함량과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안목과 그에 따른 장인적 솜씨가 깃들어 있을 때 가장 뛰어난 감정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감정의 함량과 질량을 넣고 빼는 눈매를 가지고는 있으나 그것의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하는 정도의 재주라면 결국엔 과잉과 부족에 따른 눈치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저녁의 표정 속에 피 색깔이 다른 감정이 피었다 진다

보라 연보라 흰색으로 빛깔을 이동시키는 브룬스팰지어자스민처럼

그럴 때 저녁은 고독과 가장 닮은 표정을 짓는 것이어서

팔다리가 서먹해지고 이목구비가 피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여럿이 걸어가도 저녁은 하나의 눈동자에 닿는다

빛이 굴절될 때마다 점점 그윽해져가는 회랑처럼

그럴 때 저녁은 연인이 되는 것이어서

미로 속을 헤매는 아이처럼 죽음과 다정해지고

골목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화분이 나뒹구는 꽃집 앞에서 콜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일이면 잊힐 메모지처럼 지루한 사간의 미열처럼

그럴 때 저녁은 연애에 골몰하는 것이어서

낡은 창틀 아래 피어 있는 내가 낯설어진다

 

어느 저녁에는 내가 없다

이내 속으로 풍경이 사라진 것처럼

저녁이 남기고 간 자리에 나는 없더라는 말

그럴 때 저녁은 제가 저녁인 줄 모르고 유리창 속으로 스며든다

 

혼자라는 위로는 불현듯 그때 수백 개의 얼굴로 찾아온다

강영은, 저녁과의 연애전문

 

강영은 시집 마고의 항아리는 첫 시부터 뚜렷하고 첫 행부터 강렬하다. “저녁의 표정 속에 피 색깔이 다른 감정이 피었다 진다라는 첫 행은 이성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반응부터 작용하게 한다. 그것은 문장의 구문에 관한 이해의 전제를 무시하는 감정적 어휘들의 연속적인 출현 때문이다. “저녁의 표정”, “피 색깔”, “다른 감정”, 그리고 이것들을 마무리하는 피었다 진다라는 서술이 바로 그러하다. 둘째 행에서 이어지는 보라 연보라 흰색이라는 색채, 그리고 빛깔을 이동시키는 브룬스팰지어자스민역시 색채와 빛을 통해 감정의 층위를 반응하게 만든다. “그럴 때 저녁은 고독과 가장 닮은 표정을 짓는 것임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김지명이 말했던 이성에도 표정이 있으나 강영은이 말하는 감정에도 역시 표정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가는 강영은의 시들은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신음하던 말을 쏟아낸”(가을의 중력). “왼손 모르게 오른손을 내미는 감정/왼손의 표정을 지우기엔 오른손은 너무 가”(악수)까워서 순간순간 흘러내리고 싶은 표정과 터질 듯한 감정으로 어제의 혀를 통역”(고드름)한다. “표정감정통역어제의 혀가 말한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고의 항아리첫 시의 제목 저녁과의 연애에 나타난 것처럼 이야기의 서사는 연애이며 그 배경의 서정은 저녁이다. 그리하여 그 서사에 기대어 그 서정을 발설하는 입술이 시집의 곳곳에 출몰해 자신의 연애사를 발설하는 것이다.

강영은이 보여주는 연애사는 다소 도발적이면서 그 묘사의 층위나 내면적 스팩트럼이 매우 넓다. “지구의 무릎 안쪽으로 커다란 자지가 들어왔다 초록의, 눈부신 음부를 향해 지구의 흉곽이 부풀었다”(슈퍼문)고 진술하는가 하면, “흙을 만나고 가는 꽃이 미소 지으면 도리어 일이 많다고 차갑고 맑은 입술을 돌 속에 묻은 나”(수석유화) 자신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연애사의 기록은 간절하고 격렬한 입술을 지닌 두 개의 돌이 말을 더듬는 동안//목덜미를 뚫고 나간 소름은 별이”(별똥별) 되는 것으로 이미지화 된다.

연애의 서정과 연애사의 서사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입술은 웃다가 우는 입술”(조문의 방식)이었다가 울고 웃는 입술”(음치)이 된다. “입술은 떨리고 말은 나오지 않”(하현)아 끝내 소리를 버린 입”(음악)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저, 돌의 입술도 처음엔 말랑말랑했을 것”(풍화된 입)이므로 세상의 모든 귀를 훔치려는 듯 붉게 피는 입술”(개별적인 저녁)을 꿈꾼다. 그래야만 변함없이 친밀한 저녁이 되기 위”(해거름 전망대)한 감정의 화장을 할 수 있다. 그런 연애사의 결말이 육체를 불태우는 문장이 흐느끼며 반사성운을 지날 때/별 한 개가 지상으로 리턴”(소지(燒紙))하는 이야기로 회자된다고 할지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두 개의 입술의 목덜미에서 나간 별이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를 건너고 나는 당신을 건너니

우리는 한 물빛에 닿는다

눈발 날리는 저녁과 검은 강물처럼

젖은 이마에 닿는 일

떠나가는 물결 속으로 여러 번 다녀온다는 말이어서

발자국만 흩어진 나루터처럼

나는 도무지 새벽이 멀기만 하다

당신의 표정이 흰색뿐이라면

슬픔의 감정이 단아해질까

비목어처럼 당신은 저쪽을 바라본다

저쪽이 환하다

결계가 없으니 흰 여백이다

어둠을 사랑한 적 없건만

강둑에 앉아 울고 있는 내가 낯설어질 때

오래된 묵향에서 풀려 나온 듯

강물이 붉은 아가미를 열고

울컥, 물비린내를 쏟아낸다

미늘 하나로

당신은 내 속을 흐르고 나는 당신 속을 흐른다

강영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전문

 

오래된 연애의 이야기, 그러나 결코 식상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강영은에게 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연애의 한 대상으로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그럴 그녀만의 연애.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재 수록된 시임을 감안한다면 저녁”, “표정”, “흰색”, “감정과 같은 시어들이 이 시집의 첫 시 저녁과의 연애에도 상징처럼 등장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공무도하가를 재 수록한 의도를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강영은 시의 현재적 주류인 동시에 미래까지 가늠하게 하는 시적 특질일 것이라는 말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무도하가의 재수록은 의지도 아니고 이성도 아닌, 오로지 그녀의 감정에 충실한 시적 행위라고 추론한다.

연애의 감정은 퇴색하지 않는다. 연애의 현재는 영원한 현재이다. 그것을 위해 기능하는 감정네 입술이 내 입술에 날아와 앉는/”(초적)을 열어간다. 그 계절에 당신과 나의 입김으로 태어난 모로코나비”(석간) 한 마리가 향기만 날려 보낸 꽃에 대해 가장 짧은 묵념을”(당신의 멘토) 퍼뜨릴 것이다.

 

3. 이성의 무대, 그리고 감정의 객석

 

시의 기능에서 이성과 감정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시는 이성과 감정의 두 날개로 날아간다. 이성 없이 감정만 있다면 그것은 기호나 음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감정 없이 이성만 있다면 그것 역시 신념의 발호나 묘사의 기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체득된 배분율에 의해 이성과 감정이 출현하는 정도와 농도가 다를 뿐, 어느 때나 어떤 모습이나 시를 형상화하기 위한 이성과 감정의 무대 그리고 객석의 반응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시 작업을 펼쳐나간다고 할지라도 감정의 숨김과 억제에 따른 긴장, 그리고 그로 인한 시적 특수 효과의 이미지 구현은 무대 아래에서 무대 위를 받쳐주는 감정의 역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시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이 짜고 엮어주는 틀을 기반으로 해서 감정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펼쳐진다. 이성이 마련해준 서사에 기대어 감정의 아름다운 서정이 물든다. 그래서 이성과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 같은 존재임을 다시금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듀엣으로 연주한 앙상블. 각자의 특질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과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융합이라고 정리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김지명과 강영은이 연주한 이성과 감정의 앙상블은 개성과 조화의 측면에서 잘 어우러지는 연주였다. 개성이 중요한 시대에 자기만의 어법을 장착한 연주자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미덕이다. 더불어 그 개성이 다른 연주자와 앙상블을 이룰 때 절묘한 하모니로 변주되는 호흡의 연주자가 있다는 것 또한 흐뭇한 일이다.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김지명과 강영은 두 연주자 역시도 시를 연주할 때 이성과 감정이라는 도구 중에서 어느 것을 주로 다룰 것인지, 두 가지의 배분과 비례에서 그 각각의 분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자기만의 숙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계산에 의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감각에 의해 되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성과 감정의 배합에서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지 않고 선명한 자기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김지명은 감정의 골과 흔적을 드러내면서도 그것들의 간격을 메우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처리하는 수법으로 자기만의 경쾌한 채도를 보여주었다. 반면 강영은은 색으로 치면 연보라와 보라 사이에서, 때로는 연하게 때로는 짙게 그러다가 때로는 다른 적절한 색을 타이밍에 맞춰 가미하는 수법의 감정으로 연애사의 저녁 또는 저녁의 연애사를 보여주었다.

김지명과 강영은이 펼친 듀엣 앙상블. 이성의 기쁨으로 환호하고 감정의 박수로 화답하는 관객들의 커튼콜이 계속된다. 이성의 무대, 감정의 객석. 머릿속 깊이 황홀한 저녁이다.

 

 


   -시와문화 2015년 가을호

이종섶 시인/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