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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시론詩論

눈물 병(甁)

by 너머의 새 2022. 2. 24.

눈물 병(甁)/강영은

 

고대 이스라엘에는 눈물을 받아주는 병(甁)이 있었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병이었다

울 일이 있으면 꼭 챙겨야 했고

간직한 사람이 죽으면 함께 묻어야 했던

그 병이 발굴됐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지만

손수건으로, 부의금으로 진화했다는

가담항설이 있는 것을 보면

눈에서 병으로 주소지를 옮긴 눈물은

사물이거나 자본이었는지 모른다

눈물이 병에 담길 때마다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았는지

눈물의 평생을 연구한 학자도

눈물의 색깔로 마음을 물들인 염색가도

눈물에 비치는 무늬를 짜 넣은 직공도 아니었지만

흘린 눈물을 모아 소중히 보관했던 나는

축축이 젖은 가죽 속에서

죽은 자가 흘린 울음을 꺼내들거나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던 것인데

​눈물은 지상의 모든 입을 얼어붙게 만드는 최고의

창검, 어떤 욕보다 더 공격적인 무기여서

저수지에 넘쳤던 나의 슬픔은

둑을 쌓자는 말에 쉽사리 항복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눈둑이 쪼글쪼글 해졌다

인공 누액을 넣어 봐도 눈물샘이 터지지 않는다

눈물을 모을 수도 슬픔을 담을 수도 없어졌다

당신을 향해 눈짓하던 세상이 소실 된 걸까,

눈이 눈을 바라볼 때면

한 마리 죽은 짐승, 부장품이 될 눈물병(甁)이

마른 가죽으로 붙어 있을 뿐

 

『문학 선』 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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